호스피스 병원. 죽음을 앞둔 말기환자들이 쾌적한 분위기에서 마지막 남은 시간을 보내며 편안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병원이다. 스위스의 대표적인 호스피스 전문병원인 제네바 ‘체스코’ 병원을 찾아 어떤 식으로 말기 환자들을 돕고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편집자
제네바시에서 레만호를 끼고 동쪽으로 차로 15분쯤 걸리는 거리에 있는 사보니에르가 11번지. 이곳에는 넓게 펼쳐진 숲 사이로 아름답게 지어진 ‘체스코(Cesco)’ 병원이 자리하고 있다.
잘 꾸며진 콘도 미니엄을 연상시키는 체스코는 지난 79년 문을 연 호스피스 전문병원이다. 1만여평의 넓은 대지 위에 지상 4층 건물로 지어진 체스코는 6개의 병동에 입원환자를 위한 104개의 침상을 갖추고 있다. 개인생활을 존중하는 스위스인들의 특성과 환자의 편의를 위해 병실은 대부분 1인실이고 2인실은 14개에 불과해 환자들이 쾌적하고 편안한 입원생활을 즐기고(?) 있다.
입원 및 치료비는 모두 무료다. 반은 정부가 나머지 반은 보험회사가 지급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물리치료실과 엑스 레이 촬영실 소수술실 상담실 등 환자치료에 필요한 최신 의료시설을 두루 갖추고 있으며 병원 로비에는 환자의 편의를 위한 미용실까지 있다.
하지만 체스코의 특징은 이같은 외형적인 시설보다 환자를 위한 병원 운영체계. 의사·성직자·간호사·사회사업가·자원봉사자 등이 어우러져 펼치는 ‘호스피스 활동’이 그것이다.
4명의 통증완화의학 전문의들이 상주하여 말기환자의 통증을 조절해 주고 성직자들은 상담을 통해 환자의 마음을 편하고 자유롭게 해준다. 또 40여명의 자원봉사자들과 입원환자수보다 16명이나 많은 120명의 간호사들이 주야로 환자를 돌보고 있어 언제든지 질높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원장 질버트 줄리안(43)씨는 “죽음을 앞둔 말기환자 대부분은 보살핌(care)과 함께 치유(cure)를 원한다”며 “호스피스팀은 전인적 돌봄으로 환자의 삶의 의지를 북돋워 주고 의사는 마약성 진통제 치료를 통해 환자에게 통증 때문에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심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장폐쇄증으로 입원중인 바올라(77·제네바 거주·여)씨 역시 진통제 치료로 통증을조절받으면서 새로운 삶을 찾았다. 기자가 병실을 방문했을 때 그녀는 단정한 모습으로 휠체어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곱게 단장한 그녀의 머리 모양을 보면서
오래도록 입원생활을 한 환자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바올라씨는 병원생활에 대해 “환자를 위한 이곳의 시설은 너무도 완벽하다”며 “모든 것을 간호사와 자원봉사자들이 돌봐주기 때문에 집에서 머무는 것보다 훨씬 편안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진통제를 맞지 않았을 때에는 살아있다는 것이 너무도 괴로워 항상 죽음만을 생각했었다”면서 그러나 “통증이 없어지면서 이제는 삶에 대한 희망도 생기고 병을 이기려는 의지도 강해졌다”며 원장 줄리안씨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림 솜씨가 뛰어난 바올라씨는 요즘 새 생명을 상징하는 ‘봄’을 주제로 그림카드를 만들어 병원 식구들에게 선물하곤 한다.
질버트 원장은 “호스피스는 장례를 치르기 위한 준비단계가 아니라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적극적인 의료행위”라며 “모르핀 등 다양한 마약성 진통제의 사용은 호스피스 치료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영국·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홍콩 등 호스피스 선진국에서는 환자들의 통증 경감을 위한 마약 처방이나 호스피스 병동에 대한 의료보험당국의 지원이 기본이다. 하지만 마약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는 국내 의료계 상황에선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질버트 원장은 “일반인들과 달리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말기 환자들의 통증이 없어지지 않으면 그들이 그 상황에서 무슨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말기환자들에게 마약성 진통제 사용은 최선의 치료법”임을 거듭 강조했다. 【제네바(스위스)〓이주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