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밤 뉴델리 팜람공항을 통해 인도 땅을 밟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79세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뙤약볕 아래에서 3시간 동안 시노드 폐막미사를 집전하고 여러 전통 종교지도자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등 ‘작은 양떼’인 아시아 교회에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또 아시아 각국에서 모인 추기경과 주교 신자들은 다양한 만남을 통해 새 천년기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결의와 연대감을 다졌다. 특히 교황 방문과 아울러 힌두교 최대 축제인 ‘디왈리((Diwali 7일)’로 뉴델리 시내에 활기가 넘치자 참석자들은 “인도야말로 다종교·다문화·다인종 그리고 가난이 특징인 ‘아시아의 오늘’을 진솔하게 보여주는 나라”라며 교황이 힌두교도들의 위협을 무릅쓰고 인도를 방문지로선택한 배경에 수긍.
○…7일 오전 9시 정각 교황이 시노드 폐막미사를 위해 방탄 무개차를 타고 자와하랄 네루 종합운동장에 들어서자 7만여명의 참례자들은 일제히 일어서서 ‘비바 파파!(교황 만세)’를 외치며 열광. 교황은 환호하는 신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운동장을 한바퀴 돈 후 제단에 마련된 교황좌에 착석.
이날 미사에서는 총 62명이 교황을 알현하는 ‘행운의 그리스도인’으로 선택됐다. 교황은 미사중 아시아 대륙의 복음화 비전을 담은 ‘권고문’을 30명에게 직접 수여하고 고아·시각장애인·지체장애인 등 32명에게 영성체를 해주었다. 이날 제단 장식 가운데 14살 소년 아달시 알퐁소가 그린 ‘마더의 황금손’이라는 대형 그림이 화제. 뉴욕 전시회 경력까지 갖고 있는 알퐁소는 “데레사 수녀의 황금손은 신분이나 이념 피부색에 관계없이 선행을 실천할 수 있는 인간 본래의 선(善)을 상징한다”고 설명. 미사 중간중간에 전례를 형상화한 전통 춤이 공연되자 전세계에서 모여든 카메라맨들은 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
○…교황은 6일 저녁 예수성심 뉴델리 주교좌성당에서 시노드 참가자들과 모임을 갖고 ‘교황 권고문’에 서명. 교황은 이 자리에서 아시아 대륙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선교사들을 기억하면서 ‘한국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가장 먼저 언급해 눈길. 이에 대해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는 “교황님은 한국 주교단을 만날 때면 ‘한국교회가 아시아 복음화 사명에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항상 당부하셨는데 이는 한국교회가 교황님과 전세계 교회로부터 그만큼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라고 해석.
교황은 또 “몇몇 아시아 국가가 종교적 문제 때문에 갈등과 고통을 겪고 있는데 이는 복음의 정신은 물론 다양한 방법으로 관용과 선을 가르치는 아시아의 풍부한 종교 전통에도 맞지 않는다”며 “모든 종교인은 종교와 평화는 함께 가는 것임을 증명해야 한다”고 강조.
○…뉴델리 대교구는 며칠 전 시내 번화가에서 교황 형상을 불태운 힌두교도들이 경찰에 체포되자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를 마음에 간직하길 바란다”며 석방을 탄원하는 등 경축 분위기를 전국민과 함께 나누기 위해 노력. 또 교황이 주재하는 일생 일대의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코친·마드라스 등 남인도 지방의 시골 신자들이 기차로 꼬박 이틀 심지어 나흘 걸려 도착하자 그들을 위해 숙소와 음식을
내주는 등 진한 형제애를 발휘하기도.
남인도에서 부족 25가구를 대표해 참석했다는 아지트 터키(35)씨는 “부족 사람들은 교황님이 주례하는 미사 참례를 갈망했지만 너무 가난해서 혼자 올 수밖에 없었다”며 “그대신 부족 사람들은 지금 이 시각에도 한데 모여 교황님의 성공적인 방문을 위해 기도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델리 인근의 교구들은 버스대절 요금으로 부득이 신자 1인당 40루피(US$ 1 하루 수입을 웃도는 금액)씩 거뒀지만 그나마도 낼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는 게 교구청 관계자의 귀띔.
○…교황 방문기간 동안 곳곳에서 종교간 화합과 평화를 염원하는 ‘합창’이 울려 퍼져 가톨릭과 힌두교간의 갈등이 잠시나마 눈 녹듯이 사라지는 듯. 교황은 7일 저녁 비잔 바완 회의장에서 힌두교·이슬람교·시크교·불교·자이나교 등 인도의 대표적인 8개 종교 지도자들과 만나 종교간 화합과 평화를 호소.
또 각 종교지도자들이 교황 방문에 때를 맞춰 공동 집필한 ‘빛을 향한 순례’라는
제목의 책을 교황에게 전달. 이들은 이 책에서 인도의 찬란한 문화와 종교 전통을 소개한 후 “교황의 영적 순례는 영원한 빛을 향해 걷는 모든 사람에게 확실한 이정표가 된다”고 밝혔다. 현지 언론들은 이 책의 출간에 대해 “교황에게 전달하는 다종교의 선물 꾸러미”라고 극찬.
그동안 반그리스도교 폭력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현정부 여당인 인도인민당(BJP)도 “교황은 우리에게 귀한 손님”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힌두교 지도자 가운데 한명인 사라스와티는 “교황은 개종의 메시지가 아니라 ‘평화의 메시지’를 갖고 왔다. 교황 방문을 두려워하는 것은 종교적 신념과 아량에 자신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발표. 또 다른 힌두교 대표는 “(우리) 지도자들은 그리스도교 국가인 미국이나 영국에서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교리를 설파하지 않느냐”며
타종교에 대한 관용을 호소.
하지만 인도의 종교간 갈등을 상징하듯이 시내에서는 힌두교 근본주의자들이 내건 ‘개종은 치명적인 독’ ‘힌두교의 정체성을 모욕하지 말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간혹 눈에 띄기도. 【뉴델리(인도)〓김원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