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는 춘천교구의 유일한 선교사이신 이동공소의 공 토마스 신부님의 팔순 잔치에 다녀왔습니다.
1919년 기미년에 태어나시어 20대에 사제로 서품되시고 아일랜드에서 동방의 끝에 위치한 조선에 오셨고 일제 말기와 해방 그리고 6 · 25 동란을 체험하신 신부님… 숨 가쁜 한국 현대사를 사랑하는 교우들과 함께 처절히 체험하신 노사제의 모습은 살아계신 역사의 또 다른 체험이었습니다.
그날 축하미사에는 많지 않은 교우들이 참례했음에도 신부님의 기뻐하시는 모습에서 사제로 산다는 것의 참된 의미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강론을 맡으신 육순이 넘은 선배 신부님께서는 오랜 세월을 신부님 곁에서 지켜보았는데 정말 단 한차례도 화를 내시는 모습을 못 보셨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도 역시 초등학교 3학년 때 신부님을 본당 신부님으로 모시며 복사를 섰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아도 화내시는 신부님의 모습을 기억에서 떠올릴 수 없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 같은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를 끝없이 생각하였던 하루였습니다.
생각해본 결과 신부님의 영성은 작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산을 몇 굽이 넘는다 해도 교우 한명을 보시고 찾아가시던 모습 도시의 큰 본당에서나 시골의 작은 본당에서도 걸어서 전교를 하시며 교우들과 작은 기쁨을 나누셨던 신부님이셨습니다.
얼마전 사제단 모임에서 신부님께서는 주일미사에 교우들이 열두 명 가량 참례했다며 좋아하셨고 첫 영성체 교리를 배우는 어린이들이 3명이나 된다고 기뻐하셨습니다. 그것은 진정 작은 것의 행복이며 기쁨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사제들이 큰것을 추구하고 작은것에 불만을 품고 화를 삭이지 못할 때 당신은 작은 영성을 큰 기쁨으로 키워 오셨습니다.
주일미사에 자주 빠지는 교우들 피정과 교육에 많이 참석하지 않는 교우들 본당 여러 행사에 미온적인 모습들 교무금과 헌금이 적어질 때 이는 작음의 영성을 깨닫지 못했던 내 안의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날 노사제의 소박한 모습에서 제 자신에게 다짐했던 약속이 있었습니다. 화를 내지 않고 살아가는 사제 적으면 적은 대로 그 안에서 참된 기쁨을 찾아야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다음날 비록 적은 수이긴 했으나 미사에 참례한 교우들의 한 얼굴 한 얼굴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 없었습니다.
오늘은 작음의 성녀 소화 데레사의 글을 나누고 싶습니다.
“당신의 어린 딸이 언제까지나 보잘것없고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오로지 예수님만이 보실 수 있는 작은 모래알로 남아 있도록 그리고 이 모래알이 점점 더 작아져 드디어 ‘무(無)’로 돌아가 버리도록 기도해 주세요.”
【배광하 신부】춘천교구 갈말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