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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떠나야할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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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 때 시골 공소에서 교우들을 위한 재교육을 하며 겨울방학을 보낸 적
이 있습니다. 마지막 교리를 마치고 송별식을 한 뒤 눈 내린 공소를 교우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올 때 왜 그리도 많은 아쉬움이 남던지… 새 학기가 시작되
고도 늘 그리움에 창밖을 바라본 기억이 새롭습니다.

저를 잘 아시던 교수 신부님께서 제가 사제되었을때 앞으로 가장 큰 장애는
정에 약한 것일 거라고 하셨습니다. 사제서품을 받고 첫 사목활동을 한 곳은 동
해안 푸른바다가 펼쳐 보이고 설악의 웅장함과 신비로움이 함께했던 본당이었
습니다. 정말 기쁘게 지내던 중 짧은 시간 만에 인사이동이 있었습니다. 이번엔
본당과 슬퍼하는 교우들을 뒤로 하고 미시령 정상에 다다르는 동안 울고 또 울
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되었던 사제생활 동안 몇번의 자리를 또 옮겼습니다. 그러면서
수없이 제 자신에게 다짐하는 것은 “사제는 떠나야 하는 사람이야”라는 것이
었습니다. 어느 인생인들 아니 그렇겠습니까마는 진정 떠나야 할 때를 알고 그
떠남이 아름다운 인연의 장이 되어야겠습니다.

우리는 올 때를 몰랐으며 갈 때 역시 알 수 없지만 있어야 할 때와 떠날 때
를 알아야 합니다. 사목활동을 하면서도 교우들과의 모임에서조차 떠날 때와 그
자리를 알아야 합니다. 어차피 고독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선택인데 그
고독을 껴안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본당과 교우들 물질과 여러 인연의 타래에
서 훌훌 털어 버릴 수 있는 사제…. 그것이 바른 사제상이란 생각이 듭니다.

많은 사제들의 갈등과 불만 사목상의 어려움은 그것이 꼬이고 얽힌 때문이
라 생각합니다. 글은 이렇게 쓰고 있어도 그것이 저와 많은 사제의 끊기 어려운
일인 듯 싶습니다. 때로는 끊어 버린다는 냉혹함이 세상의 별리를 만들어 모든
이와 등질 수 있다는 두려움의 엄습으로 다가옵니다.

교우들에게는 수없이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하면서 아
직까지도 주님께서 내 곁에 인생의 동반자로 함께하신다는 굳은 믿음이 없는
것은 사목의 연륜이 적은 까닭이겠습니다.

적막한 고독의 숲에서도 수없이 많은 군중의 숨결을 느끼며 수없이 많은 군
중 속에서도 고독을 찾아야겠습니다. 그리고 떠나야 할 자리를 늘 살피며 살아
야겠습니다. 일전에 보았던 글을 함께 나눕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숫타니파타)

【배광하 신부】춘천교구 갈말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1999-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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