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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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의 달 특집] 유근복 신부의 아프리카 잠비아 선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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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유근복(서울대교구)신부가 선교활 동 보고 및 후원회원 모집을 위해 일시 귀국했다. 87년 사제서품을 받은 유 신 부는 97년 2월부터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지역개발사업을 전개하고 원주민 2000 여명에게 세례를 베푸는 등 활발한 선교활동을 해오고 있다. 다음은 유 신부가
전하는 아프리카 선교 현장의 생생한 모습이다. 편집자

내가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땀부 미션본당은 중앙 아프리카의 잠비아 북서쪽 에 위치한 솔웨지 교구에 속한다. 잠비아는 앙골라 콩고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내륙 국가로 남한의 8배에 이르는 넓은 국토를 가지고 있다.
내가 관할하는 선교지역은 경기도보다 넓은 면적이다. 공소만 20곳이고 각
공소간의 거리는 40여km에 달한다. 더구나 도로조차 없어 공소를 한번 방문하 려면 아예 밀림에서의 야영생활을 각오해야 한다. 실제로 공소로 다니면서 야영 생활을 하다 보면 천막 안으로 뱀이 들어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번은 우편물을 싣고 밀림지역을 지나던 중 야생동물들의 갑작스런 출현으 로 핸들을 급하게 꺾다가 차가 전복된 일이 있었다. 같이 차를 타고 가던 유고 연방의 선교사 스티포 신부와 나는 의식을 회복한 후 겨우 창문을 깨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유리조각에 찔려 피를 심하게 흘렸으며 스티포 신 부도 머리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행히도 옆을 지나던 오토바이가 있어 병원까 지 갈 수 있었는데 이것은 거의 기적이다. 사실 밀림지역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하느님의 은총 때문에 다시 살아 났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렇듯 밀림은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밀림지역을 다니다 보면 자동 차 바퀴가 펑크나는 일은 물론이고 부속품들이 빠져나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차 가 고장나면 종종 길에서 며칠씩 지내기도 한다. 때로는 한국에서 익힌 자동차
정비기술이 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부품이 없을 때에는 500km나 떨어진 도 시까지 가서 구해 와야 한다. 밀림지역에서 차가 고장이라도 나면 사형수가 사 형선고를 받는 것처럼 막막하기만 하다.
하루는 한밤중에 내리막길을 서서히 내려오는 도중에 길이 미끄러워 차가
도랑으로 빠진 일이 있다. 우기 때라 소낙비가 퍼부어 더욱 어려운 상황이었다.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주님 도와주소서. 우리는 당신의 피조물입니다. 당신
도움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당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 신 분입니다. 고통과 죽음에서도 의미를 주시는 분 찬미 받으소서. 이 고난과
어려움으로부터 나를 깨우쳐 주시는 분 찬미 받으소서.’
잠시 후 어디선가 ‘우우’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부시맨들이 지나가는 소 리였다. 이윽고 내 앞에 부시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겁이 났다. 보통 부시맨들 은 이방인들을 만나면 강탈을 하거나 약탈하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나는 잔뜩
긴장을 하고 그들에게 한국에서 온 유 신부라고 소개했다. 다행히도 그들은 한 국의 유 신부에 대해 소문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대단히 호의적이었다. 그들은
내 도움 요청에 기꺼이 응하여 우리를 구해 주었다. 하느님의 도우심이 분명했 다.
이밖에도 생소한 음식 더운 날씨 언어문제 등등 적응하기 힘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중에서도 선교활동에서 가장 큰 어려운 점을 꼽으라면 단연
언어문제가 첫 번째다. 처음에는 언어 문제가 가장 힘들었으나 이제는 원주민들 의 언어를 어느 정도 배워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낯선 이국에서의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수도단체나 선교단체는 자신들의 공동체가 여러 곳 에 있어 어디를 가나 숙식을 해결할 수 있지만 교구 파견 선교사들은 이러한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고 후원이 지속적으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많은 어려 움을 겪는다.
그러나 나는 지역주민들을 위해 함께 일하며 그들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지난 3년 동안 주민들을 위해 100km 에 이르는 도로를 완공했으며 정미소를 만들고 농지를 조성했다. 낮과 밤을 가 리지 않고 함께 농사를 짓고 집을 지으면서 원주민들을 위해 살았다. 그 결과
지난 2년여 동안 2000여명에게 세례를 주었고 인근 지역주민들도 이제는 나를
모르는 이들이 거의 없을 정도다.
이곳 사람들의 생활환경은 극히 열악하다. 이들은 대부분 하루에 한끼 식사 를 하는데 까사바(나무뿌리 비슷한 것)와 송충이 볶은 것이 전부다. 숟가락과
젓가락도 없이 손으로 먹는다. 생활환경이 이렇다 보니 환자가 많다.
한국에서 약간의 약을 가져왔기 때문에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땀부 미션센 터에 치료를 받으러 온다. 밀림을 맨발로 뛰어다니다 다친 사람 말라리아에 걸 린 사람 머리가 아픈 사람 등등 매일 수십명씩 나를 찾아온다. 심지어 임신부 가 오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약이 며칠 안되어 금방 동나곤 한다. 의료 지식도
없고 약도 없는 나로서는 그들에게 기도밖에 해줄 수 없다. 주님께서 사제에게
주신 가장 큰 도구가 바로 기도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신기할 정도로 많은 사람의 병이 나은 것이다. 그 이후로 이곳 사람들은 나를
부쉬 덕터(의사)라고 부른다.
나는 앞으로 의류 보급 식생활 개선 주택 개량을 통해 원주민들의 생활을
향상시켜 나갈 계획이다. 원주민들을 위해 학교와 병원도 세울 꿈을 가지고 있 다. 이를 통해 주민을 복음화시켜 하느님의 따뜻한 품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그러나 이 계획은 현실적으로 한 개인의 힘만으로는 꿈에 그칠 수 있다. 머나먼
땅 아프리카 한 구석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한 사제 를 기억해 주기 바란다. 한국의 많은 신자들의 관심을 부탁드린다.
도움주실 분 : 국민은행 070―21―0448―023 예금주 유근복 신부. 아프리카
현지 연락처:873―761―984828.【정리=우광호 기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1999-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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