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리 윷놀이해요.” “노래부르고 싶어요.”
“얘들아! 우리 점심 먹고 놀도록 하자.”
초등학생 8명과 한 쌍의 부부가 밥상에 둘러앉았다. 아이들은 이내 성호를 긋고 식사전 기도를 드린다. 흥부네 집을 연상시키는 왁자지껄한 식사시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밥을 비운 아이들은 식사가 채 끝나지도 않은 부부에게 놀자고 한다.
남도의 끝자락인 땅끝(토말)에서 10km 떨어진 해안마을. 전남 해남군 북평면 영전공소에서는 이처럼 아이들의 노래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아이들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이호용(34·베드로)·김소라(34·데레사)씨 부부는 4년째 이렇게 살고 있다. 다른 젊은이들은 꿈과 희망을 찾아 도시로 몰려들지만 이 부부는 오히려 서울을 떠나 시골 외딴 공소에서 생활하고자 내려온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밭을 일궈 생활하고 또 주일학교에서 어린이들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두 가지를 공소에서라면 다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남편과 함께 무작정 해남행을 선택했지요.”
아내 김씨는 이렇게 말하지만 가톨릭 교리신학원을 졸업한 평신도 선교사 부부인 이들은 시골 마을에서 평생을 선교사로서 생활하고자 하는 뜻이 있었다.
세무 공무원인 남편 이호용씨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 세례를 받았다. 결혼 후에는 아내를 기쁘게 해주겠다는 생각에서 지난 92년 교리신학원에 다녀 평신도 선교사 자격증을 얻었고 부인 김씨도 남편의 뒤를 이어 94년부터 교리신학원을 다녔다. 이때부터 이 부부는 선교사로서 시골에서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살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아내가 교리신학원을 졸업하자 이씨는 자신의 희망 임지를 해남으로 신청했고 하느님의 도우심이었는지 해남으로 발령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96년 가을 해남으로 내려온 이들은 몇 년 동안 비어 있던 스산한 이곳 영전공소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선교사라는 인식에 거부감을 갖고 있던 마을 주민들의 눈길은 차갑기만 했다.
아내 김씨는 큰아들 주현(7·임마누엘)이를 집에 우연히 놀러온 마을 어린이와 함께 가르치게 됐다. 이런 식으로 마을 어린이들이 하나둘 공소로 모여들었고 어느덧 이곳은 마을 어린이들의 공부방 겸 놀이터가 됐다. 아직 학교를 가지 않은 어린이들은 아침나절부터 해질녘까지 공소에서 뛰놀며 지냈다.
아이들에 대한 선교사 부부의 정성어린 보살핌에 차츰 주민들의 마음이 돌아서기 시작했다. 이제는 공소로 찾아와 아이들의 간식거리와 쌀 등을 전해주며 고마움을 표시한다.
이 선교사 부부는 그러나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마을 주민들에게 ‘좋은 가톨릭 선교사’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어요. 이런 모습이 하느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고요. 어린이들에게 복음의 씨앗을 심어주기 위해 하느님의 뜻대로 노력할 것입니다.”【해남〓임동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