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천년기를 바라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로써 진정한 대희년의 의미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지 성찰해 보면 그 대답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특히 우리들의 신앙이 삶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주일학교는 청소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적인 삶을 가르치는 자리다. 따라서 새 천년기를 맞으면서 대희년의 진정한 정신이 청소년들에게 선포되는 선이 아니라 그 정신이 청소년들의 삶의 중심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주일학교 현실은 새 천년기의 정신은커녕 그 존폐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문제는 무엇보다 ‘청소년 사목’이 중요하다고 말로만 하지 실제로 그것을 우리 일로 받아들인 사람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또 사목현장에서도 그 중요성을 청소년의 입장에서 청소년들을 위해서 표명하기보다는 많은 사목 중 하나로 여기고 그것도 성전건립이나 다른 성인사목에 비해서 비중이 조금 떨어지는 수준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제 새 천년기를 펼치면서 우리에게 방향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이제는 청소년 사목이 중요하다고 ‘여길 것’ 만이 아니라 새 천년기에 걸맞은 옷을 만들어야 한다.
새 천년기는 주일학교가 처한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교회가 새 천년기를 맞으면서 이야기하고 있는 새로운 신앙의 모습은 바로 청소년들을 그들의 삶의 굴레에서 해방시키는 일이며 거기로 모든 사람들이 눈길을 모아야 한다. 이 모아진 눈길은 관람자의 눈길이 아니라 참여자의 눈길이어야 하며 대희년이 말하는 회개에 바탕을 둔 것이어야 한다.
우리들의 회개는 청소년들을 교회의 주인공으로 볼 수 있게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청소년을 단순히 내일의 주인공으로 보았다. 그러나 교회는 구성원 모두가 ‘지금 여기서’의 주인공이어야 하며 주일학교 교육은 그냥 투자되는 것이 아니라 사목되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교회는 주일학교 사목을 청소년 중심의 사목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대희년의 정신은 결국 사람을 주인으로 보는 것이랄 수 있다. 따라서 주일학교 교육이 단순히 교리 배움의 자리에서 벗어나 청소년들의 신앙의 자리 삶의 자리가 되어야 하며 그 자리를 청소년들 스스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만들어 나가야 한다. 사목자나 교사 그리고 부모는 자리를 펼쳐주는 사람이지 이끌어 가는 사람은 아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필요한 그들의 일을 신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펼쳐나갈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하며 급변하는 사회적 충격 속에서 청소년들이 복음적 정신으로 그 도전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조한수(서울대교구 교육국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