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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보는 제2천년기의 교회쇄신 노력]-계몽주의와 가톨릭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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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유럽은 ‘신앙의 시대’라 할만큼 교회의 성서와 전통에 바탕을 둔 신 앙교리들 곧 계시진리가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중세말 르네상스 이후 자연과학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계시진리보다는 인간이 관찰하고 판단 가능한 것에 더욱 무게를 두게 되었다.
16세기에 시작되어 18세기까지 계속된 절대군주제는 사람들의 사고에 또 다른
영향을 미쳤다. 군주(왕)의 권한이 직접 하느님으로부터 왔다는 ‘왕권신수설 (王權神授說)’을 내세운 절대군주제는 국가가 종교를 좌지우지하여 사람들에게
종교에 대한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더욱이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과 프로테스탄 트간의 잇단 종교전쟁은 종교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가운데 영국의 베이컨(1561∼1626)이 주창한 경험론과 프랑스의 데카르 트(1596∼1650)가 제기한 합리론이 새로운 사상으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인 간이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인식의 원천은 관찰과 실험을 통해서 얻는 경험이 라는 경험주의와 인간이성으로 명백하고 얻을 수 있는 것만이 진리라는 합리주 의는 기존의 전통과 권위를 차츰 배격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배경 하에서 태동한 것이 이른바 ‘계몽주의(啓蒙主義)’다. 무지몽매 한 상태로 살아가는 인간들을 이성(理性)에 토대를 둔 지식을 갖추게 함으로써
밝은 세계로 인도한다는 계몽주의는 17세기 후반에 시작되어 18세기에 전성기 를 이루면서 종교는 물론 사회·문화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계몽주의는 우주와 세계를 움직이는 원리와 법칙을 과학적 방법에 토대를
둔 이성의 힘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봄으로써 초자연적 세계를 거부했다. 자연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초자연적인 하느님이 아니라 자연법칙이다. 인간은 하느 님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하느님은 우주세계를 창조한 후에는 더 이상 자연계에
개입하지 않으며 세상은 자연법칙을 따라 전개될 뿐이라는 이신론(理神論)이 생 겨났다. 이에 따라 죄와 은총 등 전통적인 교리들이 거부됐고 종교적 권위를
비롯해서 기존의 모든 전통과 권위는 이성의 힘으로 타파하거나 계몽해야 할
대상이 됐다. 또 종교는 윤리생활을 잘 하도록 도와주는 윤리규범의 역할을 하 는 것으로 축소됐다.
다른 한편으로 계몽주의는 이성의 자율성과 합리성을 강조함으로써 자유· 평등·화해 같은 정신을 새롭게 일깨웠다. 그 결과 인간존엄성에 대한 각성이
일어났고 이런 정신은 미국의 독립선언(1776)이나 프랑스 혁명의 인권선언 (1789)의 토대가 되기도 했다.
이같은 계몽주의는 교회의 존립 근거가 되는 계시진리 자체를 문제시하고
교회의 전통과 권위 제도를 전면으로 부정하고 나섰기 때문에 당시 가톨릭 교 회에 엄청난 도전이었다. 이때까지 교회의 사상적 기반을 이루고 있던 형이상학 도 점차 자리를 잃게 되었다. 그래서 교회는 서적검열을 강화하고 국가권력에
호소하거나 호교론적 저술들을 출판 보급하는 등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교회
안에 침투하는 계몽주의 사조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계몽주의가 교회에 부정적인 영향만을 끼친 것은 아니다. 신앙을 배 격하고 전통을 무조건 타파하려는 급진적 계몽주의와는 달리 신앙의 진리들과
교회의 교도권에 충실하면서도 시대에 맞지않는 낡은 신심과 생활양식을 타파 하여 교회생활을 쇄신하고 계몽주의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연구방법론을 신학 에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른바 마녀사냥을 비롯해 지나치게 기적을 추구하는 신심이나 기복신앙 등
신자들의 신심생활에서 나타나는 폐단들을 없애고 참다운 예배와 신앙실천을
도모하기 위한 노력들은 사목자들에게 새로운 관심과 각성을 불러일으켜 전례
강론 교리교육과 같은 사목신학 분야의 발전을 가져다 주었다. 또 지나치게 형 식적이거나 엄격한 윤리규범에서 탈피하여 그리스도인의 윤리생활을 실생활에
맞게 제시하려는 윤리신학 분야도 크게 발전했다. 이와 함께 자연과학과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역사 비판적인 문헌연구방법을 통해 성서와 교부들의
가르침을 새롭게 이해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나 성서학과 역사신학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프랑스에서는 정통신앙과 계몽주의 사상을 조화시키려는 시도에 서 ‘철학적 교리서’ ‘이성과 종교가 조화를 이루는 교리서’ ‘현세의 행복 과 내세의 영원한 행복을 보증하는 쉬운 길’같은 새로운 교리서들이 발간됐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여황제 마리아 데레사(1740∼1780)가 교회조직과 행정 설교
전례 관습 등 교회생활 전반의 개혁을 시도했다. 그는 지나치게 많은 수도원 수 를 조정하기 위해 수도원의 신설을 금하고 24세 이하는 수도서원을 하지 못하 도록 했다. 또 성직자들의 면세특권을 폐지하고 교회사 교부학 사목신학 등을
사제양성 및 교육과정에 포함시켰다.
계몽주의는 이성의 한계를 넘는 신앙의 차원에 대해서까지 이성적으로 검증 된 내용만을 받아들이려는 유리주의(唯理主義) 사고방식을 낳았고 과거의 전통 과 관습을 무조건 거부하는 폐단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계몽주의의 합리적이 고 과학적인 접근방식은 신학과 철학 위주의 교회학문에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 했고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 같은 인접학문들을 신학의 보조학문으로 받아들이 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199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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