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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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를 찾아서] 최익철 신부 4반세기동안 성인우표 수집 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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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살이 아파트 베란다 창을 뚫고 한가득 쏟아져 들어온다. 널찍한 나무
책상 앞에 앉아 우표를 만지작거리는 노 사제의 손을 간지럼 태우는 햇살이 그
우표 주인의 미소만큼이나 화사하다.
48년 동안 사목활동을 펼치다 지난해 9월 은퇴한 최익철(베네딕도)신부. 올 해 희수(喜壽·77)를 맞은 할아버지 신부님이건만 특유의 동안(童顔)과 미소는
저 아래 놀이터에서 재잘거리며 노는 아이들의 그것과 너무나 닮았다.
“50년 가까이 성당에서 사시다 이렇게 아파트로 옮겨오시니까 답답하시 죠?” “답답하긴…. 은퇴하면 내 시간이 많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아요. 우표
정리하고 글쓰느라 바쁘게 살아요.”
최 신부와 마주 앉으면 우표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우표 수집광. 지난 25년 가까이 모아온 우표가 마치 우표수집상을 방불케 할 정 도로 아파트 여기저기에 빼곡이 꽂혀 있다.

우표 더 사려고 버스도 안타
“난 억대 부자(?)예요. 이 우표들 내다 팔면 1억원은 족히 넘을 걸…. 70년 대 중반 경희대에 불어 강의를 나가 강사료를 받으면 몽땅 우표를 샀어요. 우표 를 한 장이라도 더 사고 싶어 버스를 안타고 걸어다니기도 했어요.”
최 신부는 1884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행된 문위(文位)우표부터 1985년도
우표까지 100여년간 국내에서 발행된 우표를 한 종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소 장하고 있다. 외국 우표는 하도 많아 셀 수가 없다. 이 정도면 그에게 우표 수 집은 단지 우편요금 납부를 증명하는 증지(證紙) 모으기가 아니라 그 축소된 도 안 속에 살아 숨쉬는 세계 각국의 문화와 풍속 종교와 자연을 한데 모으는
‘예술’이다.
하지만 그의 우표 수집은 남다른 데가 있다. 사목자로서 세계 각국에서 발행 된 가톨릭 관련 우표를 ‘보물’처럼 정성스럽게 모아 놓은 것. 그는 그 보물로
월간 ‘오늘의 말씀’에 전례력에 맞춘 우표와 글을 13년째 연재하고 있다. 그 리고 그동안 저술한 책 30권 중 대다수가 가톨릭 우표와 관련된 것이다.
그가 고희 때 성인들의 우표와 전기를 묶어 ‘성인 우표 선집’(1993년)을
내자 김수환 추기경은 “신자들 앞에서 늘 어른 노릇만 해야 하는 신부생활의
긴장을 풀기 위한 취미쯤으로 알았는데 그 정도가 아니네요. 누가 신부 아니랄 까봐 우표도 외곬으로 성인 우표만 모으셨군요”라며 감탄을 했다.
그는 요즘 이 우표를 갖고 괜찮은 사업(?)을 시작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 쁘다. 400여종에 이르는 성인 우표를 확대·복사해 신자들에게 나눠주는 일이 다. 즉 신자들에게 자신의 수호성인 우표를 액자에 넣어 방에 걸어두게 하는 이 른바 ‘수호성인 모시기 운동’이다. 10일 서울 천호동성당 그리고 17일에는
명동성당에서 신청을 받는다.
“수호성인 우표가 상본(像本) 못지 않게 신앙생활에 도움이 될 거예요. 사 실 영세 때 자신의 수호성인을 정하기는 했지만 그 성인의 삶과 영성을 모르는
신자가 너무 많아요. 부모들이 먼저 자녀들의 수호성인 액자를 아이들 방에 걸 어 주세요.”
그는 이 일을 “은퇴한 사목자로서 신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봉 사”라고 말했다. “평생에 한번이라도 ‘하느님’을 부른 사람과 안 부른 사람 은 다르다”면서 사람들을 어떻게든 하느님 곁으로 데려다 주려는 착한 목자의
일면을 보여 주었다.
그는 또 사제들의 주보성인 요한 비안네(1786∼1859)의 우표 50여장과 어록 을 꼼꼼히 정리해 둔 노트를 꺼내 보이며 “이건 책으로 묶어서 이번 성탄절에
우리 신학생들에게 한 권씩 선물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노트를 매만지는 그의
손끝에서 아들과 며느리가 준 용돈을 꼬깃꼬깃 접어 쌈지에 보관했다가 명절
때면 손자들에게 나눠주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우러나온다.
“요즘도 우표를 정리하고 글을 쓰다보면 밤 12시 1시가 훌쩍 넘어요.” “신부님! 이제 은퇴도 하시고 눈도 어두우실텐데 편히 지내시지 그러세 요.” “허허! 그럴 수야 있나. 성서에 ‘달란트의 비유’(마태 25 14)가 나와요.
주인이 먼 길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재산을 맡기었는데 다섯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 돈을 잘 활용하여 주인이 돌아오자 열달란트를 전달했어요. 그러나 게으른
종은 그냥 땅에 묻어두었다가 주인한테 호되게 야단을 맞았어요. 내가 하느님으 로부터 몇 개의 달란트를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잘 활용하여 주인이신
그분께 돌려드려야지요. 그래야 착하고 충성스런 종이죠. 지금도 시간만 있다면
번역해 신자들에게 읽히고 싶은 좋은 책이 너무 많아요.”
“신부님! 신자들에게 덕담 한 말씀 해주세요.” “음악가 집안에서 음악가가 나오듯이 집안의 분위기가 아주 중요해요. 지금 이야 나 어릴 때처럼 아버지 옆에서 무릎꿇고 조만과(朝晩課·아침 저녁기도)
바치던 시절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모가 자녀에게 최대한 신앙적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또 우리가 설사 고통 중에 있다 하더라도 하느님은 우리에게 좋 은 것만 주려는 분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돼요. 자기 자식에게 나쁜 것 해로 운 것 주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하느님께 대한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업 을 하는 사람들 중에도 성공하면 내가 잘나서 성공했다고 뽐내다 망하면 하느 님을 탓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믿음은 안돼요.”
그의 덕담은 매사에 감사하면서 살라는 충고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방
한쪽 제대 위에 놓여 있는 자그마한 ‘미사지향’ 쪽지가 눈에 띈다.
‘①태어난 것에 감사 ②사제가 된 것에 감사 ③한국교회가 발전한 것에 감 사 ④성사 집전을 불성실하게 한 것을 용서 청함 ⑤사람들 마음 상하게 한 것 을 용서 청함….’
그는 “은퇴를 하고 나니 마땅히 미사지향 정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이 순서대로 감사기도를 하거나 용서를 청하곤 한다”며 웃었다. 매일매일
풍족하게 받고 살면서도 모자람을 느끼고 가득가득 채워도 늘 부족하다고 아쉬 워하는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황해도 안악(安岳)의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형이 신학생 시절
병으로 죽자 형의 뜻을 이어 사제가 되었다. 그의 큰형수 안익근은 안중근(토마 스)의사와 사촌지간. 최 신부는 50년 사제서품을 받고 벨기에 루뱅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서울 가회동·세종로·신천동본당 등 9개 본당 을 두루 돌며 사목했다.

의학발전 위해 시신기증 결심
“이제 유언장을 준비할 때가 된 것 같아요. 내 시신은 의학발전에 쓰라고
대학병원에 기증하고 떠날 겁니다. 남김없이 주고 가는 게 인생 아닙니까. 난
누군가가 비석 세워주는 것도 원치 않아요. 그런데 인간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소유욕을 버리지 못하나 봅니다. 임종 직전의 노인들을 보면 마치 젖먹이처럼
손에 무엇인가를 꽉 쥐고 놓지 않으려고 하다 죽은 후 손을 저절로 펴잖아요.
사제가 마지막까지 손에 꽉 쥐고 있을 게 십자가 말고 뭐가 있겠어요. 이제부터 는 많이 잊고[多忘] 살아야지요.”
그는 컴퓨터 앞에 앉더니 부지런히 키보드를 두드리며 자료를 뒤적였다.
‘역대 교황 우표와 전기’ ‘성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1999-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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