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화 데레사
15살에 가르멜수녀원 들어가 24살에 선종
병상에 누워서도 외방선교사제 위해 기도
2년전 서거 100주년을 맞은 전교주일에 교회학자로 선포된 성녀 데레사(187
3∼1897)는 15세에 가르멜 봉쇄수녀원에 들어가 9년 후인 24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수녀원 안에서만 지냈다.
프랑스 알랑송에서 태어나 부모와 언니들 특히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으
며 자란 그녀는 15세에 아버지를 따라 로마를 순례한 것이 유일한 장거리 여행
이었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고향에서 90 km 떨어진 리지외로 이사간 뒤 베네
딕도 수도회 소속 학교에서 공부한 그녀는 언니들을 따라 15세 때 가르멜 수녀
원에 들어가고 싶어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녀는 로마여
행 중 교황을 알현한 자리에서 나이가 어리지만 꼭 수녀원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고 소속 교구장에게도 편지를 보내 마침내 동경하던 수녀원에 입회하게 됐
다.
그녀는 수녀원에서 어린 아이와 같이 완전한 순명지덕을 배우기 위해 온갖
노력과 희생을 다했다. 원래 허약한 체질이어서 병에 걸리거나 불편을 느낄 때
가 많았지만 어떠한 궂은 일도 즐겨하고 자기를 완전히 극복하는 극기의 덕을
닦는 데 애썼다.
그녀는 죄인들의 회개와 사제들을 위해 특히 먼 지방에 나가있는 전교사제
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다. 세상을 떠나기전 병상에 누워서도 고통을 견디며
먼 지방에서 전교하는 이들을 위해 늘 기도를 바쳤다. 당시 한국에서 활동하던
파리외방전교회 사제들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이국땅으로 떠나기전 가르
멜 수녀원에 가서 기도를 부탁했다. 데레사 성녀는 우리나라에서 선교한 프랑스
출신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들에게 기도와 편지로 협력했다.
그녀는 직접 선교하러 다니지는 않았지만 하느님께 대한 완전한 신뢰와 단
순한 의탁으로 이렇게 ‘선교’를 지향으로 끊임없이 기도했기 때문에 전교의
주보 성인이 될 수 있었다.
▲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인도·일본 등서 11년 동안 3만여명에 세례
성무일도 바칠틈조차 없이 전교에만 전념
데레사 성녀와 정반대로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1506∼1552)는 전교를 위해
세계를 누비고 다녔으며 당시 그만큼 먼 곳을 돌아다니며 선교한 이는 드물다.
선교의 선구자인 그는 스페인 나바라주 하비에르성 성주의 막내 아들로 태
어났다. 파리대학에서 공부하던중 성 이냐시오 로욜로의 동료가 되어 당시 교황
청과 반대되는 노선에 대항 가톨릭을 수호하기 위해 동료 5명과 함께 ‘예수
회’를 창설했다.
그는 1537년 사제서품을 받고 자선사업에 헌신하다가 1541년 포르투갈령인
동인도 수도 고아로 출발 선교사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중국 전교를 위해 고아
를 출발했다가 광동항 상천도에서 열병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11년동안
인도 말레이시아 일본 등지를 다니며 신앙을 전했다. 그가 세례를 준 사람은 3
만여명에 달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그곳의 가난한 사람들과 어울려 그들의 초라한 음식과 잠
자리를 함께 나누었다. 병든 사람 나병환자를 위해 봉사하면서 잠잘 시간도 없
을 정도로 바쁘게 지냈다. 그러나 항상 바쁜 가운데도 그가 언제나 하느님의 현
존과 기쁨으로 가득차 있었다는 것을 그의 편지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선교활동을 동료 이냐시오에게 편지를 통해 전했다. “8년전 세
례를 받은 신자들이 사는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원주민 신자들에게 신앙을 가
르쳐 줄 사람도 미사드릴 사제도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온 후 저는 쉴 틈이
없습니다. 성무일도를 바치거나 식사를 하거나 휴식을 취할 시간조차 갖지 못했
습니다. 그때 저는 하늘나라는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
다.…‘주여 저는 여기 있나이다. 원하시는 곳이면 어디에나 저를 보내주십시
오.’”
그는 인도에 예수회 전교의 기초를 구축하고 일본에 최초로 그리스도교를
전했기 때문에 인도 및 일본의 사도로 불린다. 【이연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