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두 루가(1866년 순교)성인의 5대 손인 기완(76·요셉)씨는 요즘도 천주교에 대해 맘껏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몹시도 신기하다. 항상 엄한 모습이었던 조부는 일체 외인들과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하도록 엄포를 놓았고 온 집안식구들은 이 명령(?)을 충실히 지켰기에 지금도 마음 한 곳에는 ‘신앙이야기’가 금기어 중에 하나처럼 느껴진다.
충남 예산군 예산읍 수철리 마을. 예산읍 창소리에서 차를 타고 비포장 도로를 20여분간 달려야 닿을만큼 깊은 산골로 일명 ‘선교촌’으로 불리는 곳이다. 원래 마을이 없었으나 천주교 신자들이 피란을 와서 가시밭을 일구고 교우촌을 형성하면서 선교촌으로 더 많이 알려지게 됐다.
수철리 10번지에는 황석두 루가 성인의 5대손인 기완씨와 6대손인 해진(46·알렉산델)씨 가족이 살고 있다. 또 허름한 농가 앞에는 20여평의 공소건물이 있다. 예전에는 마을 주민 모두가 천주교 신자였지만 대부분 외지로 나가고 이제는 8가구 중 5가구만이 신자다.
조부 황세필(바오로)과 부친 황근우(안드레아)가 천주학쟁이라는 이웃주민들의 냉대를 못이겨 충북 괴산군 장현면 방곡리의 고향을 떠나 선교촌에 들어온 것은 76년전. 만삭의 몸으로 피란온 어머니는 선교촌에 들어온 해에 기완씨를 낳았다.
평생 농사를 지으면 신앙을 지켜온 기완씨는 “어려서 조부께 ‘조상 중 천주교를 믿다 목숨을 잃은 분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며 “그후 30살을 넘어서야 부친으로부터 그분이 황석두 루가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천주교에 대해 조심스러웠던 당시 분위기를 전해주었다.
그는 “참으로 가난하게 살아왔지만 신앙 만큼은 모든 것의 우선이었다”며 “재산보다는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참된 신앙을 물려주신 조상님들께 감사한다”고 성인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해마다 9월이면 자녀들과 함께 루가 성인이 효수당한 충남 보령군 갈매못을 찾아 순교의 얼을 되새기던 기완씨는 요즘 걱정이 많다. 추석이 다가와 조상의 묘에 벌초를 하고 타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자식들과 함께 성인의 묘가 있는 연풍성지에 연도도 가야하지만 무릎 관절뼈가 없어지는 협착증으로 거동이 불편해 올해는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이다.
기도문을 외우느라 조부에게 혼나던 생각이 생생하다고 말하는 그는 “성인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않는 참된 신앙인이 되도록 죽는날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나 역시 자식들에게 물려줄 재산은 없지만 철저한 믿음 속에 살다간 선조들의 신앙을 물려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이주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