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황사영 묘〓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부곡리 가마골에 위치해 있다. 인근에 송추유원지 장흥계곡 일영유원지 등이 산재해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으나 순교자 황사영의 묘소는 음식점에 가려져 있고 또 인근에 안내판도 없어 신자들조차 잘 모르고 있다.
신유박해(1801년)의 손길을 피해 제천 배론에 숨어든 황사영은 혹독한 박해의 상황을 알리고 그에 대한 대책을 건의하기 위해 탄원서를 명주 천에 적어 비밀리에 북경 주교에게 보내려다 사전에 발각돼 체포된다. 이것이 유명한 황사영 백서(帛書)사건으로 그는 신유년 11월 서소문 밖에서 27세의 나이로 처형된다.
‘백서’의 주인공 묘는 족보를 확인하는 어려운 작업 끝에 지난 1980년에 들어서야 그 위치가 확인됐다. (0351)872―0550(의정부2동본당)
▲ 수원교구 서 루도비코 신부 은신 동굴〓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에 위치한 일명 둔토리 성지. 조선에 입국한 선교사 가운데 26세의 가장 젊은 나이에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새남터에서 순교한 파리외방전교회 성 루도비코 볼리외 신부가 박해를 피해 은신했던 동굴이다.
성남시 분당구와 의왕시를 잇는 342번 지방도를 따라 안양쪽에서 가다 하우현 고개를 넘어서면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나오고 곧 이어 길 왼쪽으로 안내표지판이 보인다. 이곳 입구에서 산길을 따라 40여분 오르면 볼리외 신부의 마지막 흔적이 남아있는 굴아위 동굴을 만난다. 어른 8명이 앉을만한 크기의 이 동굴은 성 김대건 신부가
서울을 오가며 교우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했던 곳으로도 전해진다. 사유지인 이 지역 토지매입을 비롯한 성지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분당 마태오 본당 신자들은 9월 순교자성월 동안 구역별로 매일 이곳을 순례하며 기도하고 있다. (0342)711―4268(분당 마태오본당)
▲인천교구 강화 갑곶돈대〓조선정부가 프랑스인 성직자 9명을 처형한 책임을 물어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범한 사건이 1866년 병인양요다. 당시 프랑스 함대는 이곳 갑곶돈대에 상륙해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했다가 후퇴했다. 갑곶돈대는 1679년에 축조돼 8문의 대포를 설치한 포대를 두었던 곳이다. 병인양요 이후 강화지역에 극심한 박해가 이어져 갑곶돈대와 건너편 백사장은 수많은 신자들의 피로 얼룩졌다.
강화도 교회사적지로는 갑곶돈대 외에 관청리 형방과 황사영 생가터도 있다. 강화성당에서 100m도 채 안되는 곳에 있는 고려 궁궐터내 동헌과 형방에서는 병인박해 당시 천주교인에 대한 극심한 고문이 자행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황사영 생가터는 황씨문중의 사당 옆 잡초사이에 약간의 공터로만 남아있다. (032)933―2282(강화본당)
▲ 대전교구 여사울〓‘내포의 사도’ 이존창(루도비코 1752∼1801)의 생가터가 있는 구교우촌. 충남 예산군 신암면 신종리 생가터 바로 못미쳐 여사울 공소가 있다.
농민 출신의 이존창은 초기교회 창설자의 한 사람인 권일신으로부터 교리를 배워 입교한 뒤 고향으로 내려와 내포지방 일대 복음전파에 앞장섬으로써 ‘내포의 사도’로 불리며 사제 영입을 위해 윤유일 지황 등에게 여비를 주어 중국 북경을 찾게 해 주문모 신부를 맞이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신해박해 때 붙잡힌 이존창이 고문을 못이겨 배교한 뒤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잘못을 뉘우치고 전교에 혼신의 힘을 쏟은 결과 내포지방은 다른 지방보다 교세가 커져갔고 많은 순교자를 배출하게 됐다. 그도 황새바위에서 참수됐다. 성 김대건 신부 집안도 그의 전교로 입교했으며 김 신부의 할머니는 그의 조카딸이 되고 최양업 신부도 그의 생질의 손자다. (0458)334―7860(신례원본당)
▲ 춘천교구 강릉 동헌(칠사당·객사문)〓강릉시청 옆에 있는 칠사당과 시청 뒤편에 있는 임영관 객사문은 병인박해 때 많은 신자들이 심문을 받고 순교한 곳. 하지만 강릉지역 순교자로 교회 공식문헌에 나타나고 있는 이는 ‘치명일기’에 기록돼 있는 심스테파노 한사람뿐이다. 객사문 길 건너편에 임당동성당이 있다. (0391)642―0700(임당동본당)【이연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