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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보는 제2천년기의 교회쇄신의 노력]선교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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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 착취와 보호 유럽 각국의 식민주의 정책과 결부된 해외선교 특히 신대륙 선교는 역사적으로 적지않은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유럽 원정대들은 금과 향료 설탕과 커피 등을 찾아 대륙 깊숙히 진출하면서 세력을 확장해갔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그리스도교 신앙을 원주민들에게 전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원주민들에 대한 착취와 강압적인 개종요구 등의 부작용이 잇따랐고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는 일까지 생겨났다. 원주민들에 대한 착취가 극심해지자 교황 바오로 3세는 1537년 원주민들은 자유인이며 그들을 강제로 개종시키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의 칙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교사들 가운데는 이런 불의한 상황을 고발하고 원주민의 편에서 정의를 지키려고 노력한 많은 이들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도미니꼬회의 바르톨로메오 데 라스 카사스(1474∼1566)를 들 수 있다. 그 역시 처음에는 원정대원으로 원주민 착취에 동조했다. 그러나 1514년 회심하여 사제가 된 후 그리스도교적 양심에 입각해 일생을 인디안 원주민들을 보호하는 데 바쳤다. 원주민들에 대한 개종 강요를 금지한 바오로 3세의 칙서도 라스 카사스의 영향에 힘입은 것이었다.

라스 카사스는 ‘인디언 파괴에 관한 간략한 이야기’라는 글을 발표 원주민들에게 가해지는 잔혹상들을 고발하는가 하면 ‘모든 인간에게 신앙을 선포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란 글에서는 사랑을 실천하는 모범적인 생활로 원주민들을 설득시키는 평화로운 선교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이런 사상은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재강조됐다.

또 스페인에서는 신학자인 프란체스코 데 빅토리아가 스페인의 식민주의 정책의 정당성에 대해 강력히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1539년에 발표한 ‘인디안과 법의 권리에 관한 강좌’에서 정복자들의 행위를 강력히 규탄하면서 식민지에서 그리스도교적 양심을 지킬 것을 촉구했다.

원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이런 노력들은 다른 한편으로 원주민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었다. 특히 세례를 받아 신자가 되고 난 후 원주민들은 교회 정신에 충실한 성직자들의 지도와 보호 속에 식민지 관리들의 착취와 횡포에 맞서기 시작했고 이런 저항이 곳곳에서 일어나자 식민지 관리들은 오히려 원주민들의 개종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경향까지 있었다.
토착화 문제 아메리카 대륙의 선교가 원주민들의 인권문제와 관계가 있었다면 아시아 대륙에서의 선교는 복음의 메시지를 현지의 문화와 어떻게 융화시키는가 하는 문제가 관건이 됐다.

아시아 선교의 선두주자들인 예수회원들은 선교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인도와 중국에서 ‘적응주의’ 선교방식을 택해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인도에서는 로베르트 데 노빌리가 중국에서는 마태오 리치와 아담 살 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예컨대 노빌리는 1605년 이후 인도 남부 말라바에서 지내면서 힌두교의 바라문(婆羅門)처럼 생활하고 전례에도 바라문 예식을 원용했고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1623년 일정한 조건 하에서 이 바라문 예식을 허용했다. 또 중국에서는 마태오 리치 등 예수회원들이 공자 공경과 조상제사를 중국 고유의 문화로 이해해 이를 수용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나 예수회에 뒤이어 프란치스꼬회와 도미니꼬회가 아시아에 진출하면서 이런 적응주의 선교방식을 그대로 허용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오랜 논쟁이 계속되면서 마침내 1742년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인도의 ‘말라바 예식’과 중국에서의 ‘조상제사’을 모두 금지했다. 이로 인해 인도와 중국의 가톨릭 교회는 기반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특히 조상제사 금령은 한국에도 영향을 미쳐 1784년 한국 천주교회가 탄생한 이후 피어린 박해를 받는 한 원인이 되었다. 조상제사 금령은 1939년 교황 비오 11세와 1940년 비오 12세에 의해 철회됐지만 아시아 선교를 더디게 한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세계 선교시기에 교회가 겪은 이런 문제들은 오늘의 우리에게 두 가지를 반성하도록 해주고 있다. 하나는 선교 곧 복음화는 무엇보다 먼저 인간다운 삶을 증진하는 것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화가 전제되지 않는 복음화는 복음의 메시지를 죽은 메시지로 만들고 만다. 다른 하나는 복음의 메시지와 정신이 시대와 문화에 녹아들어 내부로부터 변화된 복음정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토착화 또는 ‘문화의 복음화’다.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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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1999-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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