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5일
본당/공동체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지난달 28일 새 교구장 맞은 부산교구 발자취와 현황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부산광역시와 경남 일부 지역을 사목 관할구역으로 하는 부산교구는 서울과
수원 다음으로 신자수가 많은 한국 3대 교구의 하나다. 1957년 6월 교구(대목 구)로 승격돼 올해로 42년째를 맞는 부산교구의 역사는 크게 기초 확립→안정 과 갈등→성장 지향의 3단계로 구분된다.
▲태동에서 기초확립까지〓경남지방의 첫 본당은 1890년에 세워진 부산본당 (현 범일동본당 전신). 하지만 1860년께 한국의 두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가
죽림골(경남 울주군)에 은신하면서 이 지역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등 신자 공 동체는 훨씬 이전부터 형성돼 있었다. 1863년 무렵 경남지역의 교우촌은 16∼17 개에 달했다. 오륜대 수영 장대벌 조씨형제묘 살티 등은 모두 박해시대에 복 음의 씨앗이 널리 퍼져나가면서 형성된 순교성지와 사적지.
부산교구는 1911년 대구대목구에 소속되면서 조직을 갖추고 급격한 교세성 장을 이뤄 일제말기에는 7개 본당으로 늘어났다. 특히 6.25 전쟁이 발발하자
‘성분도 자선병원’ ‘성모보육원’ 등을 열어 가난한 이들과 전쟁고아를 위 한 사회복지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부산교구가 타교구에 비해 사회복지사업이
활발한 이유는 전쟁의 와중에서 일찍부터 가난한 이들에게 눈을 돌렸기 때문이 기도 하다.
▲안정과 갈등〓1957년 교구 승격과 함께 초대교구장에 오른 최재선 주교는
‘기도하며 일하자’는 사목표어를 내걸고 기반마련과 교세확장에 힘을 쏟았다.
이때 교구는 ‘먼저 1개 군에 1개 본당 다음으로 1개 면에 1개 본당을 설립한 다’는 계획으로 교세확장에 주력해 괄목한만한 성장을 이룩했다. 특히 최 주교 는 교세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제양성에 남다른 열정을 보여 10년간 28명의
사제를 배출하는 결실을 거뒀다. 교세와 사업기관이 증가해 1966년에 마산교구 를 분할했다.
1970년 무렵에는 교구 행정의 효율화 과정에서 성직자들 간에 갈등이 빚어 지는 바람에 한차례 위기를 겪었다. 이때 평신도들은 ‘성직자 단결 건의문’을
내고 교구정화평신도촉진위원회를 구성하며 갈등을 지혜롭게 수습했다.
▲성장 지향〓교구 운영과 사목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이는 71년 보좌주 교로 임명된 후 75년 제2대 교구장에 착좌한 이갑수 주교. 이 주교는 성직자와
신자들에게 ‘화합과 일치를 통한 새로운 발전’을 호소하면서 교구 구석구석 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다. 교구는 성년(聖年) 강연회와 성년대회 등을 통해
안정을 되찾으면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해 나갔다.
덕분에 80년대 중반부터는 신앙쇄신과 지역사회 복음화 등 미래 지향적인
활동에 눈을 돌려 비약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의 부산 방문에 맞춰 개최한 전교구민 신앙대회와 이때 폐막한 교구 공의회는
이같은 노력의 일부분이다. 73년에 42개던 본당이 86년에는 62개로 늘었으며
신자수도 20만명을 넘어섰다.
아울러 교구는 90년대 들어 2000년대 복음화를 준비하면서 91년 부산 가톨 릭대학을 개교하고 97년에는 ‘새하늘 새땅을 향하여’라는 주제로 교구설정
40주년 기념 신앙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역대 교구장 재임 약력]
▲최재선 초대교구장(1912∼ )〓1957년 교구 설립과 동시에 초대교구장에 오 른 최 주교는 73년 교구장직을 사임할 때까지 15년간 교구 사목과 행정의 기초 를 닦는 한편 교세 신장에 주력했다. 최 주교는 ‘기도하며 일하자(ORA ET
LABORA)’라는 사목 표어 아래 교구 사목체계를 수립하고 교육 및 의료사업 을 확장했다.
최 주교는 61년에 ‘신자 배가운동’을 전개하면서 평신도의 성모신심을 함 양하기 위해 묵주 6만개를 전교구민에게 나눠준 일화를 갖고 있다. 교구장직 사 임 후 75년 한국외방선교회를 창설하고 초대총재로 일하다 지금은 은퇴해서 해 외선교를 뒷바라지하고 있다.
▲이갑수 제2대 교구장(1924∼ )〓71년 보좌주교에 임명된 직후부터 교구사 목과 행정을 총괄한 이 주교는 70·80년대 괄목한만한 교구 발전을 주도했다.
보좌주교 임명 당시 본당 36개소 신자 7만1000여명이 지금은 91개소 35만여명 으로 증가했다.
이 주교는 교구설정 25주년 신앙대회(82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 신앙대회 (84년) 교구설정 40주년 신앙대회(97년) 등 굵직굵직한 교구 행사를 개최했으 며 해양사목과 교도사목 등 특수사목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지산고등학교(89년) 와 부산 가톨릭대(91년) 개교를 통해 교육사업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보여주기 도 했다.【김원철 기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1999-09-05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9. 5

요한 1장 3절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