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잠실7동 보좌 이태석(아우구스티노) 신부는 매년 순교자 성월이
되면 서랍 깊은 곳에 소중하게 보관해둔 족보를 꺼내본다.
1784년 이벽의 권유로 중국 북경에 가 예수회 선교사들에게 교리를 배운 후
그라몽(Jean Jose
h de Grammont 1736∼1812) 신부로 부터 세례를 받은 한국
교회 최초의 세례자 이승훈(1756∼1801)의 7대 직계 후손.
외아들에서 외아들로 어렵게 이어온 이승훈 가계에서 그것도 종손이 사제라
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드물다. 지난해 사제 서품자 면담과정을 통해 드러나
기 이전에는 가장 가까운 동료사제들조차 그가 이승훈의 직계자손임을 몰랐을
정도. 그만큼 이 신부는 자신이 이승훈의 자손임을 드러내길 꺼렸다.
“물론 마음속으로야 제가 한국교회 최초 세례자의 직계 후손이라는 점이
자랑스럽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가 지금 여기서 열심히 신앙안에
서 사는 것만이 순교자들의 신앙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교회의 처음과 직선으로 맞닿아있는 그로서는 요즘 순교자성월이 남다
른 의미로 다가온다. 비록 ‘세 번의 배교’와 ‘자료부족’ 등 여러 이유 때문
에 이승훈이 성인품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결국에는 신앙을 위해 순교했기 때문
이다.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서도 교회의 반석이 된 것처
럼 이승훈도 비록 세 번의 배교를 했지만 마지막 순교하기 전에는 자신의 신앙
고백을 시로 남길 정도로 깊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매일매일 배교하는
삶을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너무나 인간적인 순교자 이승훈의 영성이 더 가깝
게 다가옵니다.”
이 신부는 또 그늘에 가려진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시성 작업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며 잊혀져가는 순교영성을 안타까워했다.
“아직도 많은 신자들이 선조들의 깊은 순교신앙을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분들의 잊혀져가는 순교정신을 오늘에 되살
리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신부는 오늘도 먼지 쌓인 족보속에 담겨진 신앙의 흔적들을 묵상한다.
【우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