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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석 장면의 생애와 업적 학술회의 지상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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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석 장면의 생애와 신앙에 관한 연구’(조광 고려대 교수)
순교자 영성·복음삼덕 실천한 참 신앙인 가톨릭 신앙에 입각해 단군이래 처음으로 이땅에 민주주의 실현
운석 장면은 신실한 신자이자 양심적 교육자 탁월한 외교관이자 권모술수를
버리고 정도를 걷던 올바른 정치인이었다.
부모의 영향으로 천주교 신앙을 갖게 된 그는 천주교에서 운영하던 박문학 교를 다니면서 신앙교육을 받았다. 소신학교 교사생활을 하면서 프랑스 선교사 들의 엄격한 신앙생활을 보며 신앙을 키워나간 그는 또 맨해튼 대학에서의 수 학을 통해 전통적인 가톨릭 신학과 철학에 접근할 수 있었다.

올바른 신앙인으로 삶에 충실했던 그의 신앙적 특성은 순교자 영성과 수도 자적 복음 3덕(복음적 권고)을 꼽을 수 있다. 그는 1925년 조선순교복자 79위
시복식에 조선 신도대표로 참석한 후 순교자 신심을 강화했고 31년에는 ‘조선
천주교공교회 약사’를 저술하면서 조선 순교복자에 대한 지극한 존경을 표시 했다.
특히 21년 프란치스꼬 제3회에 입회한 후 항상 이 수도회의 영성에 따라 생 활했다. 정치인이 된 이후에도 복음적 권고로 칭해지는 ‘청빈’의 정신에 따라
부정과 부패를 배격하고 청렴한 생활을 실천해 갔다. 또 ‘정결’을 실천함으로 써 평생 동안 천주십계의 제6계명을 단 한번도 범한 적이 없음을 자신있게 말 한 바도 있다.
이밖에도 호교적 글을 통해 천주교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했으며 타종교에 대해서도 개방적인 자세를 견지했다. 또 평신도사도 직 운동의 선구자로 활동하면서 이 운동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이를 보 급하기 위해 노력했다.
1930년대 동성상업학교(현 동성고등학교)교장을 역임하면서 식민지하의 조선 인들에게 근대교육을 실시한 교육자였다. 해방 후 정치계에 입문한 장면은 48년
제3차 유엔총회파견 대한민국 대표단 수석대표를 역임했으며 49년 주미 특명전 권대사를 시작으로 바티칸 호주 뉴질랜드 대통령 특사로 외교활동을 펼쳤다.
민주주의의 선봉자로 자유당 치하에서 반독재 투쟁 최일선에서 민주주의 신 장을 위해 노력해온 그는 경제개발계획의 선구자였다.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확 고한 신념을 살펴보면 민주당 정권은 단군 이래 처음으로 이 땅에 민주주의를
실현한 정권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또 민주주의 실천을 위한 장면의
결의와 노력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새로운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현대인들 에게 적지 않은 역사적 교훈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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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1999-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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