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프랑스 발랑스에서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뜻깊은 추모식이
열렸다. 프랑스 혁명 당시 나폴레옹에 의해 교황령을 빼앗기고 유배의 몸이 되
었던 교황 비오 6세(1717∼1799)의 서거 200주년 기념식.
비오 6세는 나폴레옹이 로마를 점령한 후 로마공화국을 선포하자 유배의 몸
이 되어 시에나 플로렌스 등지를 전전해야 했던 불운의 교황. 1799년 마지막으
로 발랑스로 끌려간 비오 6세는 그곳에서 그해 8월29일 영욕의 세월을 뒤로하
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비오 6세는 프랑스 혁명의 불길 속에서 교회와 성직자에 가해지는 박해로
인해 큰 고통과 수모를 겪었다. 역사가들은 그를 2000년 교회역사상 가장 모진
시련을 겪은 교황으로 평가하고 있다. 당시 교회재산이 몰수되고 무려 4만명의
성직자가 투옥되거나 처형됐다.
하지만 비오 6세는 격변의 현장에서 교회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1790년 교회재산의 국유화에 관한 법률이 발표되자 교서 ‘구옷 알리관툼’
(Quod aliquantum)을 통해 교회를 파괴하는 프랑스 정책을 비난했다. 교황령이
짓밟히자 혁명세력에 대항할 십자군 동맹을 촉구하는 한편 국민과 통치자들에
게 신앙을 지킬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기념식에 로저 에체가라이 추기경을 특사로 파
견 “비오 6세 교황은 지혜와 성실로 풍전등화와 같은 교회를 지키기 위해 노
력했으며 고통스러운 유배생활중에도 적을 위해 기도하다 세상을 떠났다”는
내용의 추모사를 전달했다.
비오 6세는 조선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1792년
북경 구베아 주교에게 조선교회에 대한 보호와 지도를 위임하는 등 한국교회와
도 각별한 인연이 있다. 그의 유해는 성 베드로 대성전에 안장돼 있다.
【김원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