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 주교는 교구 발전의 기틀을 확립 70·80년대 비약적인 교세 성장을
이뤄낸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이 주교가 71년 부산 보좌주교로 임명되어 주교
품을 받을 당시 본당 36개소 신자 7만1000여명이던 교세가 지금은 본당 91개
소 신자 35만명으로 증가했다.
71년 부임 당시 부산교구는 관리·운영적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 평신도들이
성직자들 사이의 화해와 교회운영 참여 등을 건의하며 ‘교구정화 평신도촉진
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고 있었다. 때문에 이 주교는 부임 직후
부터 교구 정책의 합리화를 위해 노력하며 화합과 발전을 기초부터 다졌다. 이
로인해 부산교구는 지속적으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이 주
교는 또 78년 항구도시답게 해양사목을 시작하고 이어 교도사목에도 눈을 돌리
는 등 특수사목을 활성화했다.
특히 이 주교 자신이 “부산 가톨릭대학에서 첫 사제를 배출한 것에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듯이 부산 가톨릭대 개교는 빼놓을 수 없는 공적이
다. 88년 부산 가톨릭대 설립추진위원회를 발족할 당시만 해도 사제와 신자들은
반신반의했지만 이를 일관되게 추진해 91년 학교 문을 열고 지난해 첫 사제를
배출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부산교구는 앞으로 5년내에 100여명의 새 사제를 배
출할 예정이다. 교구는 여유 사목인력을 특수사목과 사회사목에 투입해 이 분야
를 한층 강화할 계획이다.
또 이 주교는 80년대 중반부터 신앙쇄신과 지역사회 복음화 등 미래 지향적
인 사업에 주력하면서 신앙대회와 교구 공의회를 개최하고 사회복지사업을 꾸
준히 전개했다. 덕분에 부산교구는 현재 전문적인 사회복지사업의 체계를 갖췄
다.
1924년 경북 영천에서 출생한 이 주교는 50년 사제수품 후 61년 미국 포담
대학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75년에 교구장에 착좌했으나 71년 보
좌주교 시절부터 교구의 운영을 도맡아 ‘28년 교구장 봉직’이라는 말이 크게
틀리지 않는다.【김원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