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루터(1483∼1546)에 의해 촉발된 16세기의 종교개혁은 유럽의 정치·
경제·사회·문화 전반에 엄청난 변혁을 초래했다. 루터를 비롯한 프로테스탄트
(Protestant · ‘항거자’라는 뜻)의 개혁운동은 결국 그리스도교를 분열시켰
지만 다른 한편으론 교회 안에 충실히 머무르면서 교회를 쇄신하고자 하는 노
력들도 계속되었다.
특히 종교개혁 이후 교회 지도부가 추진하던 쇄신 노력은 우여곡절을 거쳐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다. 또 트
리엔트 공의회 후기에 가톨릭 교회는 수많은 성인을 배출하게 되는데 1520년부
터 1620년까지 1세기 동안 교회 안에서 공식적으로 시성된 성인만 36명이다. 그
래서 이 시기를 성인들의 시대라고도 부른다.
◇ 트리엔트 공의회
교황 바오로 3세(재위 1534∼1549)가 1545년 12월3일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
지방의 트리엔트에서 소집했다고 해서 트리엔트 공의회로 불리는 이 공의회는
1563년 12월4일 폐막될 때까지 무려 18년의 기간이 걸렸고 10여년간 중단되기
도 했지만 교회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공의회 중 하나로 평가된다. 그것은 무엇
보다도 이 공의회에서 가톨릭 신앙과 규율의 핵심 문제들이 재정비되고 이를
통해 교회가 속화된 모습에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기반을 마련했기 때
문이다.
공의회는 성서만을 하느님 계시의 유일한 원천이라는 루터의 주장에 맞서
성서와 함께 성전(聖傳·거룩한 전통)도 같은 계시의 원천으로 똑같이 존중돼야
함을 분명히 했다. 또 오로지 믿음만으로 구원된다는 루터의 주장에 대해 믿음
이 구원의 시작이요 기초이지만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믿음과 함께 선행이 따
라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와 함께 하느님의 은총만을 강조하여 교회의 성사를
부인한 루터에 맞서 교회의 7성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기원을 두고 있음을 명
확히 했다.
공의회는 특히 성체성사와 관련 미사의 성변화 때에 빵과 포도주가 모양은
그대로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실제로 변화된다는 실체변화 교리를 채
택하고 고해성사에서의 비밀고백과 보속 등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확실히 했
다. 또 주일과 대축일 미사에 강론을 의무화하고 소속 본당 신부와 2명의 증인
앞에서 맺어지지 않는 모든 혼인은 무효로 결정했다. 이밖에 연옥 대사 성인과
유해 공경 성화상 공경 등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도 체계화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회기 초기에 500명의 주교 중 겨우 34명만이 참석했고
주교가 가장 많이 참석했을 때도 237명이 최고였을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 그러
나 프로테스탄트 개혁운동으로 흔들리던 교회의 정통 교리를 공고히 하고 교회
생활의 여러 규범들을 명확히 함으로써 오랜 세월 누적되어온 교회내의 그릇된
폐단들을 바로잡고 교회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기
여를 했다.
학자들은 트리엔트 공의회가 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에 대한 교회의 최고
응답이라고 평가한다. 그것은 프로테스탄트의 종교 개혁에 대해 교도권이 맞대
응 했다는 의미에서가 아닌 오히려 교회의 내적 각성을 통한 쇄신의 길을 열었
다는 의미에서다.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정들은 지난 1962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까지 교
회 생활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영향을 주었으며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
도 교회와 신자들의 삶 곳곳에 미치고 있다.
◇ 성인들의 시대
트리엔트 공의회 후기 시대는 또 박해시기를 제외하고 가톨릭 교회 역사상
가장 많은 성인을 배출한 시기다. “죄가 많은 곳에는 은총도 더욱 풍성하게 내
렸다”(로마 5 20)는 말씀처럼 교회가 내부적인 부패와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으로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을 때에 바로 그 교회 안에서부터 순수한 누룩으로
서 교회의 내적 정화와 쇄신에 앞장선 이들이 바로 이 성인들이었다.
이 시기의 성인들로 우선 교황 비오 5세(재위 1566∼1572)를 들 수 있다. 비
오 5세는 300년만에 처음으로 성인이 된 교황이다. 그는 트리엔트 공의회의 방
침에 따라 교회를 내적으로 쇄신하는 것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여겼다.
그는 추기경단의 개혁을 시작으로 성직자들의 개혁을 철저히 시행하면서 가톨
릭 교회의 교리를 집대성한 ‘로마 교리서’를 1566년 펴냈다. 이 로마 교리서
는 지난 1992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에 따른 새로운 ‘가톨릭 교회 교리
서’가 나오기 전까지 426년간 가톨릭 교회의 표준 교리서 역할을 했다. 그는
또 ‘로마 성무일과’(교회를 대표하여 의무적으로 바치는 성직자들의 공적 기
도)와 ‘로마 미사 전례서’를 간행하기도 했다. 이 기도서와 미사 전례서 역시
최근까지 사용돼 왔던 것들이다.
또 성 베드로 가니시오(1521∼1597)를 들 수 있다. 독일의 예수회원인 가니
시오는 유럽 전지역과 특히 독일의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가톨릭적 개혁을
이루기 위해 지칠 줄 모르고 활동했다. 그는 특히 종교 교육을 강조하여 많은
대학을 세우고 교리서를 펴냈다. 또 다른 성인으로 가를로 보로메오(1538∼
1584)주교가 있다. 밀라노의 대주교인 그는 이미 21세 때 추기경에 임명된 인물
로 트리엔트 공의회의 개혁 정신에 충실했던 사목적 주교였다. 그는 엄격한 절
제 생활을 하면서 많은 관구회의와 교구 시노드를 소집하고 대학과 신학교를
세우는 등 공의회의 개혁 정신을 훌륭히 수행했다. 그의 개혁 활동은 이탈리아
는 물론 스위스와 독일 지역에서도 주교들의 개혁 활동의 모범이 되었을 정도
다.
스페인의 대표적 성인으로는 아빌라의 대 데레사(1515∼1582)수녀를 들 수
있다. 19세 때 가르멜 수녀회에 입회한 그녀는 이완된 수도생활에 회의를 느껴
수도회를 개혁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수도회를 세울 것인지를 깊이 고민하였
다. 그러나 마침내 수도회를 내적으로 개혁하기로 하고 수도회 쇄신을 위해 평
생을 바쳐 당시 쇠퇴일로를 걷고 있던 가르멜 봉쇄 수도회의 쇄신에 크게 기여
했다. 이런 대 데레사에게 영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 바로 가르멜 회원인
십자가의 성 요한(1542∼1591)이다.
로마의 성인으로는 필립보 네리(1515∼1585)가 있다. 그는 명랑하고 낙천적
인 성격의 소유자로 평신도와 사제들과 함께 기도하고 노래하면서 하느님을 찬
미하고 병자와 순례자들을 위한 봉사에 헌신했다. 그가 이런 목적으로 세운 수
도회가 오라토리오회다. 또 필립보 네리의 친구인 로욜라의 이냐시오(1491∼
1556)는 궁정의 군인이었으나 부상을 당해 병상에서 지내던 중 일생을 하느님
께 바치기로 결심하고 예수회를 창립한 성인이다.
이밖에 우르술라 동정녀회의 창설자 안젤라 메리치(1474∼1540) 중환자와
임종자들을 위한 가밀로회를 창설한 가밀로(1550∼1614) 로욜라의 이냐시오와
함께 예수회의 창립자로서 포교사업의 수호자로 불리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1506∼1552) ‘독일 제2의 사도’라 불리는 베드로 가니시오(1521∼1597) 등도
모두 이 시기의 성인들이었다.
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으로 그리스도교가 갈기갈기 찢겨 나갔던 그 극한
의 시기에 헌신적인 희생과 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