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에 나서게 된 동기 가운데 하나로 대사(大赦) 문제를
꼽을 수 있다. 국내에 소개된 여러 역사책에는 대사를 ‘면죄부’로 표현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번역이다. 대사를 뜻하는 원어 인둘젠씨아(Indulgentia)는
원래 ‘너그러움 관대함 용서’의 뜻을 담고 있다.
대사의 유래 초기 교회에서 사도들은 어느 신자가 죄를 범하면 그가 속해 있
는 공동체에서 단죄하여 쫓아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죄인이 죄를 고백하고 뉘
우치는 경우에는 하느님께 용서를 받고 교회 생활에 다시 참여할 수 있었다.
2세기께에는 세례를 받은 후 죄를 범했을 경우 단 한번만 죄사함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박해시기를 거치면서 교회는 박해 때 배교했다가 참회한
신자들을 엄격히 단죄하기보다는 교회와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6세
기부터는 사제에게 죄를 개별적으로 고백하고 죄의 경중에 따라 속죄의 벌을
받는(보속) 개별 고해제도가 성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보속의 방법이 매
우 엄격했고 속죄 기간도 길어서 신자들이 보속을 다 이행하지 못하고 죽는 경
우가 많았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교회는 죽은 이들을 위해서는 살아 있는 신자
들이 대신 보속하는 대속을 시행하도록 허가했고 살아 있는 신자들에게 대해서
도 장기간의 엄격한 보속을 완화해 주기 위해 기도와 성지순례 등의 신심 행위
나 자선행위로 보속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대사의 시행과 남용 10세기쯤에 와서는 보속으로 다 기워 갚지 못하는 벌(잠
벌·暫罰)에 대해 교황들이 일정한 조건을 부과하면서 사면해주는 대사가 시행
되기 시작했다. 그 조건들은 교회나 가난한 이를 위한 헌금이나 선행들이었다.
물론 이 대사를 얻기 위해서는 진정한 참회의 정신으로 죄를 뉘우치고 고해성
사를 보아야 했으며 속죄의 정신으로 희사나 선행을 실천해야 했다. 그리고 13
세기에는 죽은 이들에게도 대사가 부여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교회가 부패하고 속화하면서 대사가 남용되는 폐단이 생기기 시작했
보다는 세속적인 권력에 더 관심을 두었던 주교들은 교황으로부터 대사 권한을
부여받아 이를 남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심지어 많은 헌금을 받기 위해
‘헌금통에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자 마자 영혼은 연옥에서 해방된다’는
극단적인 표현까지도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대사 논쟁 루터는 참회와 기도 희생 그리고 선행을 통해서가 아닌 돈으로 구
원을 얻고자 하는 이런 악습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1517년 10월31일
대사의 남용에 항의하는 95개 조항의 성명을 내걸었고 이것이 종교개혁의 직접
적인 도화선이 된 것이다.
이 대사 논쟁은 ‘오직 성서만으로’ ‘오직 믿음만으로’ ‘오직 은총만
으로’로 대표되는 루터의 신학 사상을 공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루터는 교회에 반기를 들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
면서 루터는 점점 더 자신의 입장을 완강히 내세우기 시작했고 이제는 대사의
폐습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는 수준이 아닌 자유의지 원죄 은총 고해성사 대
사 연옥 교황의 수위권 등 교회의 핵심 교리들을 반대하는 차원으로까지 확대
됐다.
그리하여 마침내 1521년 1월3일 루터를 비롯한 그 추종자들은 교회로부터
파문당하게 되고 이것이 바로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출발하는 계기가 됐다.
【이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