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14일 오후 3시 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족자치주 용정시 두만강가 개
산둔공소. 먼지를 털며 장작이 높다랗게 쌓여있는 비좁은 부엌 겸 출입구를 들
어서니 2평 남짓한 허름한 중국식 건물의 공소 내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중국
인들로부터 7000원(중국화 50위안)에 빌린 중국의 전형적인 농가를 개조한 공
소. 방안엔 십자가를 그린 그림과 성모상 등 성화 몇 점이 걸려있다. 아직 중국
당국으로부터 인가를 받지 못했지만 조선족 신자들은 어김없이 주일이면 이 좁
은 공간에서 공소예절를 바치기 위해 모여든다.
서울대교구 가락동본당 성지순례단이 공소를 방문한다는 소식에 50리길을
한달음에 달려온 최영숙(67·데레사)씨는 무척 감격스런 표정이다. 1년만에 방
문한 가락동본당 주임 최선웅 신부를 반기던 최씨는 “우리 공소와 신자들에게
이처럼 많은 관심을 기울여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며 눈물을 내비친다.
연변 조선족자치주. 80년대초 중국이 개방되면서 그 덕에 ‘침묵의 교회’에
서 ‘선포하는 교회’가 된 연변의 가톨릭교회는 89년 첫 조선족 사제 엄태준
(38·아브라함·현 연길본당 주임)신부를 배출한 지 10년만에 ‘기회’와 ‘위
기’를 동시에 겪고 있다.
연변 자치주의 인구는 총 200만명. 이 가운데 조선족은 110만명으로 조선족
신자는 4500명에서 5000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또 본당도 연길본당 돈화본당이
설정돼 있다. 개방 이전만 해도 거의 신앙의 불모지였던 점을 감안하면 격세지
감일 정도로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셈.
최근 연변 자치주 교회는 큰 경사를 맞았다. 지난 92년 9월 길림신학교를 졸
업했던 염창원(35·필립보) 윤덕헌(30·베드로) 두 신학생이 지난달 25일 길림
신학교 성당에서 길림교구장 장한민(다마소)주교로부터 부제품을 받은 것이다.
염창원 부제와 윤덕헌 부제는 오는 9월8일 길림성의 수도에 위치한 장춘성당에
서 사제서품을 받게 된다. 엄 신부와 같은 심양신학교 출신으로 흑룡강성 하얼
빈본당에서 사목중인 이용철(요셉)신부에 이어 세 번째 네 번째 사제가 잇따라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더 긍정적인 변화는 연변신자들의 ‘성소’가 잇따르고 있다는 점. 현재 사
제들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압력에도 불구하고 길림신학교 전체 신학생 40
명 가운데 2명의 조선족이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조광택(요한)신학생이 6학년
졸업반이고 이광필(베드로)신학생은 2학년. 또 수도성소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는 전언이다.
연길·용정·돈화·도문·훈춘·화룡의 6개 시와 왕청·안도의 2개 현으로
이루어진 연변의 가톨릭교회는 특히 돈화시와 훈춘시 도문시 안도현 등에서
교세가 확장되고 있다. 연변의 신자들은 겨울이면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혹한
속에서도 매일미사에 참례하면서 신앙을 지키고 있다. 요즘엔 특히 66년부터 10
년간에 걸쳐 진행됐던 문화대혁명 당시 파괴됐던 성당과 공소를 수리하고 재건
축하느라 분주하다.
새로 성당을 건립중인 연길본당 도문공소의 경우 성당 내부 인테리어 공사
만 남기고 거의 완공 상태로 전체 210명의 신자 가운데 50 이상이 매주 공
소예절에 참례할 정도로 열심이다. 전호승(61·베네딕토) 도문공소 회장은 “서
울 세나뚜스에서 교육받고 1년전부터 레지오 마리애를 시작했다”면서 “병자
방문 등 신자들의 활동도 왕성하고 활력이 있을뿐더러 신자증가도 가파른 상승
세를 타고 있다”고 말한다.
전형적인 농촌공소인 연길본당 명성공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화대혁명
때 파괴됐던 성당을 성 베네딕도회의 지원을 받아 지난 95년 복구한 최천일(6
0·바오로)회장 등 공소신자들은 신학생들로부터 밤낮없이 기도문과 교리를 배
워 20일만에 세례를 받을 정도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사회복지사업에
도 열심이다. 일례로 명성공소 신자 이춘애(50·데레사)씨는 90년대초 청주교구
음성 꽃동네를 방문 감명받고 돌아와 ‘사랑의 집’을 시작했다. 이씨는 “처
음부터 성서를 붙잡고 기도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이제는 무연고 할머니 7명과
고아 1명이 아주 사이좋게 살고 있다”면서 “아무래도 부족한 점이 많지만 신
앙으로 버티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연변의 가톨릭 교회는 ‘어려움’도 함께 겪고 있다. 중국당국이 인
정한 ‘애국회’와 지하교회의 갈등도 그 원인 중의 하나다. 또 무너진 성당 복
구나 신축도 열악한 재정상태 때문에 어렵고 성가집이나 기도서 묵주 등도 크
게 부족한 실정이다.
연길본당의 경우 중국정부에서 인정한 공소가 20개지만 비공인 공소는 35개
로 집계되고 있다. 비공인 공소 중 개산둔 소도 노투구 공소는 올해 안에 공소
인가가 가능할 전망이다. 그렇지만 신자들과 ‘애국회’ 소속 사제나 수도자들
과의 갈등으로 아예 쉬는 신자가 되거나 지하교회로 가는 신자들도 많다. 그러
나 이들에 대한 당국의 통제는 그다지 심하지 않은 편이다.
연변본당 비서장(사무장) 지철근(46·토마스)씨는 “89년 50∼60명에 불과하
던 연길본당 신자수가 10년이 지난 최근에는 600명을 바라볼 정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사제나 수도자와 평신도의 대화부족과 갈등으로 2∼3년전보다 오히려
신자수가 줄고 있다”면서 “어떤 공소는 회장이 일을 잘못해 공동체가 무너질
위기에 처한 곳도 있고 어떤 신자들은 아예 냉담하거나 지하교회로 옮겨가는
사례도 왕왕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연변 조선족자치주의 교
회들은 사제성소도 늘고 있고 신자들도 전반적으로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어 아
주 ‘희망적’”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한국교회에서 ‘북방선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먼저
중국을 알고 중국내 조선족들의 심정을 알고 중국의 종교정책을 이해해야만
‘선교’가 가능하다”면서 “중국과 한국은 명백히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면 연변 나아가 중국선교는 십중팔구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연변 조선족자치주〓오세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