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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에 평화] 이준화 신부 몽골 농업선교 현장 르포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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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공항을 출발 중국 상해와 북경을 지나 황톳빛 고비사막을 건넌 비행기가 3시간 20분 만에 대전교구 몽골 선교 현지방문단 일행을 내려준 곳은 해발 1300m에 위치한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의 부앙우크나 공항.
울란바토르 시내로 가는 길 양편의 푸른 초원 위에는 몽골 유목민의 전통 원형천막인 ‘게르(Ger)’와 말을 타고 양떼를 모는 몽골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초원을 가로질러 러시아의 바이칼호까지 흘러간다는 톨강 울란바토르 시민들에게 전기와 온수를 공급해주는 화력발전소가 시야에 들어왔다. 2000년 전부터 내려오고 있는 전통적인 유목생활양식과 현대의 과학기술 문명이 공존하고 있었다.
몽골에서의 첫날 오후 울란바토르에 있는 이준화 신부의 아파트에 여장을 풀었다. 곳곳에 거미줄처럼 금이 가 있고 위험스러워 보이는 4인승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아파트였지만 울란바토르에서는 비교적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이 신부는 설명해 주었다.
짐을 정리하고 몽골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한국인 신자 3명과 함께 미사를 봉헌했다. 몽골의 한국인은 600여명에 달하지만 신자는 이들이 전부였다. 주일이면 한국인 신자 3명 외에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조승호(36·프란치스코)씨와 경리를 맡고 있는 몽골인 아모르 자르갈(35)이 함께 미사를 드린다.
미사 봉헌 후 시내 서북쪽에 있는 ‘바향흐셔’ 지역으로 향했다. 그 곳으로 향하는 도로변엔 많은 컨테이너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몽골에는 도둑이 많습니다. 자동차 타이어 유리 등 닥치는 대로 뜯어갑니다. 심지어 보고 있는데도 가져가려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는 집단농장이 문을 닫고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공장가동률로 인해 실업률이 45에 달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바향흐셔 지역의 집들은 대부분이 쓰러져 가는 판잣집과 ‘게르’로 울란바토르에서도 가장 가난한 이들이 살고 있었다. 이 신부는 이곳에서 가장 가난한 몽골인들과 함께하기 위해 판자촌이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성당부지 4000평을 정부로부터 허가받았다. 앞으로 여기에 무료급식소와 빈민들을 위한 병원을 세워 운영할 계획이다.
방문단은 8일 끝없이 펼쳐져 있는 대초원의 중앙을 가로질러 이 신부가 선교의 발판으로 삼고 있는 에르덴산트 근교 ‘가나안 선교농장’으로 향했다. 그곳까지는 울란바토르에서도 서남쪽으로 200km를 더 가야했다.
한반도의 7배에 달하는 몽골의 대초원에는 기껏해야 인구 250만명이 흩어져 살고 있으며 최대의 도시인 수도 울란바토르의 인구도 60만명에 불과하다. 농장으로 가는 초원지대에서 가끔씩 차를 운전하는 이를 제외하고 사람 보기란 가축 한마리 보기보다 더 어려웠다.
구 소련의 지원으로 건설된 포장도로는 누더기처럼 곳곳이 패어 한국에서라면 2시간이면 족할 거리를 타이어가 펑크나고 부속이 망가져 5시간여 만에 겨우 농장 어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로 오른편으로 ‘가나안(KANAAN) 선교농장’이라고 적힌 우리말 안내표지판이 반갑게 맞이했다. 표지판 뒤로 끝없이 트인 드넓은 초원 한가운데 목조가옥과 흰색 게르가 모여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농장부지를 표시하기 위해 박아놓은 말뚝을 따라 3km를 더 들어가 농장정문으로 들어섰다. 지난해까지도 게르 두동에 컨테이너 1개가 고작이던 농장에는 우측으로 게르 네동이 들어서 있고 그 앞쪽으로 나무로 만든 커다란 창고와 올해 새로 지었다는 통나무집 2채 왼쪽으로 채소를 심은 비닐하우스가 자리하고 있다.
게르 앞에서 뛰놀던 4살배기 어린이 3명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보더니 한 어린이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한국인들을 접촉하며 자연스럽게 익힌 모양이다.
농장 건물 양옆으로는 지난 5월에 심은 밀과 감자가 선연한 푸른색을 띠며 자라고 그 뒤로는 사용하기 위해 갈아놓은 기름진 땅이 검은빛으로 다음해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해초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척박한 땅에 짧은 풀만 자라고 있었습니다. 농장 가족들과 함께 트랙터로 땅을 갈고 수확할 수 있는 밀과 감자를 심기까지 2년 반이란 세월이 걸렸습니다.”
이준화 신부는 97년 3월 몽골에서의 선교를 마지막 사명이라고 생각하며 몽골에 왔다. 몽골인들은 가난했고 신부나 수녀를 ‘놀고먹는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땀흘려 일하는 사제의 모습을 보여주고 더 장기적으로는 이들의 기본적인 식량문제와 고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사를 짓기로 했다.
지난해초만 해도 에르덴산트 사람들은 농사를 짓겠다는 이 신부를 이해하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갑작스런 추위와 물 부족으로 밀농사에 실패한 경험도 있다. 그러나 몽골인을 위해 사제직을 모두 건 이 신부는 지난해의 실패를 좋은 경험으로 받아들였다. 올해 20만평에는 밀을 3만평에는 감자를 심는 등 지난해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심었다. 예상되는 생산량도 밀이 100t 감자가 350t에 이른다.
“몽골 최고의 농장을 만들어 이 농장에서 나오는 수익금을 모두 몽골인들을 위해 사용할 생각입니다. 선교를 위한 무료급식소도 운영하고 아동보호소도 세울 계획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이 농장에 사활이 걸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는 수확의 기쁨을 꼭 맛보아야 한다. 올해 감자농사만 잘 되면 다음해에는 4배를 수확할 수 있고 2년 후에는 그가 목표하고 있는 양을 생산할 수 있다. 그리고 이윤은 다시 몽골인들을 위해 사용된다. 또 농장이 계획대로만 운영되면 200여명에게 일자리를 줄 수도 있다. 그냥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닌 땀흘려 일하는 노동의 의미도 가르쳐 주고 싶기 때문이다.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날마다 조금씩 커가는 밀과 감자를 보며 이 신부는 가슴이 뿌듯해지는 것을 느낀다. 【몽골〓임동근 기자】
▨ 몽골〓아시아 대륙의 중앙.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끼여있는 고원 내륙국가로 면적은 156만6500㎢ 인구는 257만8000명이다. 주민은 몽골인 90 카자흐인 4 중국계 2 러시아계 2로 구성돼 있으며 대부분이 라마교 신자다. 가톨릭 신자는 현재 70여명. 1920년대 교황청에 선교사를 요청한 적이 있었으나 공산혁명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고 92년 교황청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주한 교황대사가 몽골 주재 교황대사를 겸하고 있다.
▨ 이준화 신부〓1953년 경북 성주 출생으로 가톨릭대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90년 2월 사제로 서품됐다. 당진본당 보좌와 논산 대건 중·고등학교 및 쌘뽈 여자 중·고등학교 교목을 거쳐 운산본당 주임신부 겸 대철중학교 교목을 지내다 지난 97년 2월28일 몽골로 향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1999-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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