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빛과 혼의 화가로 불리는 네덜란드의 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
는 1654년 이후부터 성서에서 소재를 얻은 종교화를 많이 남겼다. 그는 특유의 명
암법으로 높은 종교적 정감과 인간 내면의 움직임을 잘 나타냈다. 그의 작품 가운
데서 우리 눈에 익은 것은 아마도 ‘엠마오의 제자들’일 것이다. 이것은 파리 루
브르 박물관 안의 렘브란트방에 전시되어 있는 작은 그림이다. 이 그림은 엠마오
의 제자들을 다룬 루가복음 24장 13―35절에 근거를 둔 작품이다. 그림의 중앙에
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앉아 계시는데 눈은 하늘을 우러러보고 손은 빵을 나누는
모습이다. 양옆에 앉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젊은이가
시중을 들고 있다. 왼쪽에서 비치는 빛은 중심인물인 예수께 집중되고 있다.
서울대교구에서는 해마다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
제 순교자 대축일’ 무렵에 부제 및 사제서품식을 거행한다. 올해는 올림픽 제1체
육관에서 6일에 39명의 신학생이 부제로 7일에는 33명의 부제가 사제로 서품 되
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서 서품 받는 일은 세계 어느 교회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서품식 전에 전례담당 신부는 체육관을 서품식 분위기에
맞게 꾸미기 위해서 많은 고민을 하였다. 그때 나는 제단 뒤를 장식할 그림을 몇
점 선정해 주었는데 ‘엠마오의 만찬’은 그 가운데 하나였다. 그림을 확대하여
제단 뒤의 배경으로 꾸미니 원화(原턛)보다는 수십 배나 크고 선명한 그림 한가운
데 예수님이 앉아 계셨고 그분으로부터 나오는 따뜻한 빛이 새 성직자들과 교우들
을 향하여 비치고 있었다.
서품식이 거행되던 양일간 무더운데도 불구하고 교우들은 몇 시간 전부터 입장
하여 새로 탄생하는 부제들과 사제들을 위해서 기도하였다. 수많은 평신도들의 소
박하고도 간절한 기도에 힘입어 우리 주위에서 성소자들이 끊임없이 배출되는 것
이다. 새 부제들과 사제들은 제단에 엎드려 기도하는 부복예절(俯伏禮節)을 통해서
다시 한번 세상에 대해서 죽고 오직 주님을 섬기며 살 것을 다짐하였다. 그 시간
서품식장을 가득 메운 성직자와 수도자들 부모님과 교우들도 함께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안수예절 때에 할아버지 신부님 한 분이 불편하신 몸으로 정
성껏 새 사제들의 머리 위에 안수하시는 것을 바라보면서 후배사제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사제의 삶은 유한해도 하느님의 사제직은 서품식을
통하여 영원히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서품식은 성직자나 수도자들뿐 아니라 하느님 백성 모두에게 가장 큰 경사임에
틀림없다. 새 사제의 탄생과 함께 성직자의 부모가 탄생하고 새로운 신앙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날 그 자리에서 나도 다시 새 사제들과 함께 서품을 받는
듯하였다. 오직 한 가지 바람은 서품식 때 가졌던 그 마음을 잃지 말고 평생 간직
하며 살아갔으면 하는 것이다. 일찍이 엠마오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하
고 나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부활의 증인이 되었던 것처럼 새 사제들 역시
이 시대에 주님의 또 다른 제자가 되어 부활의 증인이 되어주기를 바라며 서품식
장을 뒤로하였다.
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홍보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