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 학교에 들어가던 때부터 늘 입버릇처럼 “우리 손자 학사님이
신부님 되는 것은 보고 죽어야 할텐데…”라고 말씀하시며 매일 묵주의 기도
15단씩 바치시던 우리 할머니께서 아흔이라는 연세로 10년 기다림에 지치셨는
지 서품식을 얼마 앞두고 그만 앓아 누우셨다.
서품식이 끝나고 부리나케 달려가 할머니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해드리자
“나만 못 갔어!”라며 울먹이시는 할머니를 보며 나 또한 글썽이는 눈물을 참
을 수 없었다. 서품식장을 가득 메운 많은 교우 앞에서 주교님의 두 손안에 나
의 두 손을 모아 넣고 존경과 순명을 서약하던 그 순간에 병상에서 당신도 나
처럼 두 손 모으셨을 할머니에게 사제로서 안수해 드리는 것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을까?
사제로 다시 태어나는 것 그리고 평생을 사제로 성실히 살아가는 것은 분명
우리 할머니뿐만 아니라 많은 교우의 기도에 힘입은 것이고 또 그분들에겐 큰
선물이 될 것이다. 사제와 교우들은 이처럼 공동체 안에서 서로에게 큰 힘과 큰
선물이 되어주는 관계인 것이다.
북아프리카 히포의 주교였던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교우들에게 “나는 여러
분을 위한 한사람의 주교이고 여러분과 함께 한사람의 신앙인입니다”라고 말
씀하셨다. 성인의 말씀처럼 나도 이제 한사람의 사제로서 교우들을 위하여 성찬
의 신비를 거행할 것이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죄를 사해줄 것이며 병자들을 위
로하고 혼인으로 맺어진 새 가정을 축복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나 자신
역시 그분들과 함께 한사람의 신앙인으로서 살아가야 함을 잊지 말아야겠다.
사제와 도로표지판의 공통점이 사람들에게 길을 가르쳐주면서 결코 자신은
그 길로 가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듯이 교우들에게는 구원의 길을 가르치
면서 나 자신은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읽는 바를 믿고 믿는 바를 가르
치며 가르치는 바를 실천하는’ 사제로 살아갈 것을 다짐해본다.
“사제는 교우들의 기도를 먹고 살아간다”는 말이 있다. 이 지면을 통해 이
번에 서품된 새 사제들과 모든 사제가 영원한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아 평생 기도와 가난과 겸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교우들의 끊임없는 기
도를 감히 부탁드리고 싶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닌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세상에 나가 언제까지나 썩지 않을 열매를 맺어라”(요한 15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