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10월28일 로마 교황청 주교 대의원회의 회의실.
전세계에서 교회법을 전공한 내로라하는 추기경과 주교 80여명이 모여 새
교회법전의 초안을 두고 마지막 논쟁과 토론을 벌인지 벌써 8일째. 이 날은 지
난 2000년간 있어온 수많은 교회법령들을 하나로 집대성하는 역사적인 날이었
다.
휴식 없이 오후 늦게까지 이어진 마라톤 회의를 거쳐 새 교회법전의 초안은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추기경과 주교들은 “이 초안을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교
황에게 제출하여 교황이 적합하게 여기는 때와 방법으로 법전을 발간하도록 하
는 것을 합당하게 생각한다”는 문건에 서명했다. 이 법 초안은 곧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제출됐고 83년 1월25일에 반포 그해 11월부터 시행됐다. 법전
개정을 위해 교황청 교회법 개정위원회가 구성된 지 20여년만의 일이었다.
제헌절은 우리나라의 헌법 제정을 기념하는 날. 그러나 이 헌법의 뿌리가 바
로 교회법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나라 헌법 곳곳에 녹아있
는 교회법의 모든 것을 알아본다.
▲교회법의 영향〓교회법의 우수성은 다른 일반법들과 달리 교회가 규정한
제정법일 뿐만 아니라 절대 진리이자 선(善)인 하느님의 자연법과 성서나 성전
에 계시된 신 제정법(神制定法)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진리에 가깝게
그리고 가장 인간 양심에 가깝게 제정된 것이다.
교회법의 역사는 신약성서에 나타난 ‘할례 면제’(사도 15 1―21)와 ‘바
오로 특전’(Ⅰ고린 7 12―16) 등 사도들의 법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특히
1140년께 수도자인 그라시아노가 과학적으로 집대성한 그라시아노 법령집이 유
명하다. 총 3945개조로 이뤄진 이 방대한 법령집은 교회의 공식 법령집은 아니
었지만 그때까지 실천신학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던 교회법을 법학으로서 자
리잡게 했다는 점에서 권위를 지니고 오랜 기간 교회 안에서 통용되었으며 당
시 여러 국가법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교회법이 일반 사회법에 미친 영향 중 가장 우선적으로 손꼽을 수 있는 것
은 모든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사상을 들 수 있다. 교회법에서 처
음으로 실현된 이 평등사상은 이후 거의 전세계 모든 법에 영향을 미쳤으며 특
히 남녀평등 노예제도의 폐지 신분 계급의 타파에 기여했다. 교회법은 초세기
부터 로마법과는 달리 혼인의 불가해소성을 강조했으며 여성의 법률적 지위를
높이고 성년이 된 여성에게 결혼의 자유를 인정했다. 또 오늘날에 당연시되는
인권에 대한 개념도 일찍부터 교회와 교회법에 의해 도입되었다. 교회법은 또
형벌의 목적에 대해서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응보의 속죄벌과 함께 교정벌의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국가 형벌제도의 완화에 기여했으며 교회법의 영향을 받
아 많은 나라들이 태아나 유아살해 부녀약탈 등을 범죄로 처벌하게 됐다.
▲교회 법전의 내용과 구성〓서방 라틴 교회의 교회법전으로는 1917년 반포
된 ‘비오―베네딕도 법전’으로 불리는 구법전과 앞서 언급한 1983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반포된 현재의 교회법전이 있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교회법전이 바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반포된 교회법전이다.
이 교회법전은 전세계 라틴 가톨릭 교회 안에서 일반적인 성격을 가진 보편
법들을 담고 있는 유일한 것이다. 교회법전은 1752개 조항으로 이뤄져 있으며
제1권 ‘총칙’은 교회법의 일반 원칙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고 제2권 ‘하느
님 백성’은 교회 구성원들에 관련된 규범과 교회사목 행정을 위한 봉사직무의
구성과 조직을 담고 있다. 제3권은 교회의 가르치는 직무(교회의 교도임무)를
제4권은 교회의 거룩하게 하는 직무와 성사와 경신례를 규정하고 있으며 이외
의 제5권은 교회의 세속 재산법을 제6권은 교회 안의 제재로 볼 수 있는 형법
그리고 제7권은 교회의 소송법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법전은 교회의 일반법을 다루는 법전으로 교회의 다른 모든 법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교황 선출법이나 세계 주교 대의원회 구성법 교황
청 기구조직법 시복시성 절차법 등은 그 좋은 예로 교회법전에 들어있지 않다.
특히 새 교회법은 지방분권 원칙에 따라 각 지역이 지역법을 다루도록 일반 원
칙을 간략하게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수한 사항이나 또는 변화에 민감한
행정부서에 대한 것 등은 따로 다루도록 하고 있다. 또 전례법과 관련해서도 전
례거행 때에 지켜야 하는 규율에 대한 규정은 있지만 예식에 관한 규정은 수록
되어 있지 않다.
재미있는 것은 이 교회법전이 일반 사회의 관행을 받아들인 점이 많다는 것
이다. 성년의 연령규정을 20세에서 18세로 하향 조정한 것이나 혈족계산법도
기존 게르만 문화의 옛 관습에서 벗어나 일반사회의 계산법을 따르고 있다.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교회법은 개별법과 보편법으로 분류되는데 특히
개별법은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보편교회법이란 민족의 역사와 문화와 언어와 풍속이 각기 다른 전세계의 모든
신자들이 지키도록 제정된 법을 말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반포한 교회법
전이 바로 보편교회법을 담고 있다.
이에 반해 개별교회법은 보편법에 따라 위임되거나 허용된 사항들을 개별
공의회나 주교회의에서 제정해 사도좌의 승인을 받은 규정들 그리고 각 지역교
회가 해당지역의 국법이나 풍속을 참조해 자발적으로 제정하여 사도좌의 승인
을 받은 규정들을 말한다.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는 92년 주교회의 봄 정기총회에서 확정 94년 4월
예수부활대축일에 공포되었으며 그해 6월14일 성령강림대축일을 기해 시행됐다.
이 법은 84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사목회의 의안내용을 전폭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사회·문화적 상황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토착화된 법.
1931년 라틴어로 된 ‘한국 천주교 공용지도서’ 이후 64년만에 전면 개정
된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는 256개 조항으로 이뤄져 있다. 제1편 하느님의 백
성 제2편 전례와 성사 제3편 사목은 한국적 상황을 고려 83년에 개정된 새 보
편교회법의 내용을 압축하고 있으며 제4편 선교와 신자단체 제5편 사회부분은
200주년 기념사목회의 의안내용을 전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또 제6편은 교회법
에 준용할 국내의 민법 규정들을 담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교회에서는 이 개별법이 해당지역의 보편법에 우선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보편법의 규정과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의 규정 사이에
차이점이 있으면 한국에서는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의 규정이 우선한다.
더 나아가서 한국 내에서 만약 어느 한 교구에서 제정한 교구법 규정이 있
다면 그 교구에서는 그 교구의 법규정이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의 규정보다
우선한다.【우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