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성탄을 앞둔 어느 날 오후에 나는 파리 시내에 있는 작은 성당을 방문
하였다. 방문 목적은 그곳에서 사목하고 계시는 보좌신부님을 만나기 위해서였
다. 그곳의 주임신부님보다 연세가 훨씬 많으신 보좌신부님은 환갑을 넘긴 할아
버지셨는데 두 분 사이가 무척이나 좋아 보였다. 소문에 의하면 그분은 세계 여
러 곳에서 발행된 그림책과 여러 종류의 교회 예술 자료 대부분을 가지고 있다
는 것이었다. 좁은 응접실과 침실 안에는 온통 수많은 그림책들과 카드들 사진
과 슬라이드 리플릿과 포스터들이 가득하였다. 또 주일학교 행사에 사용되는
다양한 색상의 의상들도 옷장 가득히 걸려있었다. 그곳에는 유럽의 미술품뿐 아
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의 그림 자료들도 무척 많았다. 사제관이라기보다는 자료
전시실과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이 자료들을
교리교육이나 피정 때 활용합니다. 그냥 강의만 하는 것보다 시청각 자료를 쓰
면 효과가 훨씬 좋습니다. 저는 40여 년 동안 전 재산을 털어 자료들을 구입했
기 때문에 지금은 빈털터리가 되었지요. 그런데 온갖 정성을 들여 자료들을 모
았지만 그것이 제 자신만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필요로 하는 사람들
에게 기꺼이 제공해 주면서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저 또한 기쁨에 젖을
수 있습니다”라며 껄껄 웃으셨다. 세계에 흩어져 있는 교회 예술품 자료를 모
으기 위해서 책임이 무거운 주임신부보다는 보좌신부를 자청하여 평생을 그 직
책으로 사목하고 있지만 참으로 행복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날 오후 내내 자
료들을 살펴보면서 그것들을 모으기 위해서 애쓴 신부님께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무렵 나는 유럽의 여러 도시에 있는 크고 작은 성당들도 방문했다. 그 가
운데서 몇몇 성당 안의 한쪽 벽에는 성당을 지을 때 사용되었던 틀이나 대패
같은 모든 연장들이 가득히 전시되어 있었다. 손때 묻은 연장들이 무슨 가치가
있다고 성당 벽에 걸어두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그 아래에 적혀있
는 글을 읽고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처럼 크고 아름다운 성전도 작은
연장을 손에 잡고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인 사람들에 의해서 완성되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지 않고자 그때 사용했던 연장들을 이곳에 영구히 전시한다.” 성
당을 신축할 때 사용했던 연장까지도 보관하여 전시할 정도인 것을 보면 다른
자료들의 보관상태는 언급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40년 동안이나 교회예술과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하고 있는 할아버지 신부님
과 성당 벽에 전시되어 있는 연장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부분
의 유럽 사람들은 하찮은 물건조차도 수명이 다할 때까지 사용한 후 그것들을
잘 닦아서 박물관에 보관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료나 물건들을 정리하여 보관하
고 활용하는데 매우 소홀한 듯하다. 수년 전 사목하던 본당에서 ‘본당사’를
제작했는데 그때 자료의 부족 때문에 매우 난처했었다. 본당에서 가장 기본적인
자료라 할 수 있는 사진첩이나 주보조차 제대로 보관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본당이나 단체에서도 장차 교회사의 일부가 될 자료의 보존에 지금보다 더욱
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주위에 있는 수많은 자료들도 시간이
지나면 문화와 역사의 소중한 유산이 되기 때문이다.
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홍보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