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가 남다른 목자다. 음
성 수봉초등학교 3학년 때 세례를 받은 뒤 40여년간 계속된 기도생활 생활과
성서 말씀을 명쾌하게 연결시키는 실천적 강론 사제서품 전인 70년대 중반 교
구에서 처음으로 연제식(현 충주 연수동본당 주임)신부 등과 함께 시작했던 성
령세미나 등이 장 주교의 사목적 삶을 관통하고 있다.
장 주교는 또 늘 ‘순교’를 묵상해온 목자다. 배티성지 담임에 임명됐을 때
“사제로서 생명을 바칠 수 있는 행복한 자리”로 여겼을 만큼 순교 신심에 열
심이었다.
온화하면서도 부드러운 성품 그러면서도 결단력있는 목자의 상을 보여줄 것
으로 기대되는 장 주교는 특히 평신도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 사제로 알려져
있다. 모든 모임에서 꼭 평신도 대표를 찾을 뿐 아니라 평소에도 평신도들의
의견을 많이 수렴하는 ‘귀 큰’ 성직자다.
장 주교의 출생지는 충북 음성군 읍내리 413번지. 지난 83년 67세를 일기로
선종한 부친 장주영(요셉)씨와 모친 박영순(74·아녜스)씨 사이의 5남2녀 중 장
남이다. 형제로는 용훈(48·베네딕토)·시훈(45·데레사)·근훈(41·갈리스도)·
미훈(38·아가다)씨 홍훈(35·세르지오·로마 성 우르바노대학 박사과정중)신
부 현훈(32·에드워드)씨 등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음성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장 주교는 이후 중학교 때까
지 한차례도 새벽미사를 빠지지 않았다. 그런 열심을 본 본당 사제의 추천으로
소신학교였던 성신고등학교에 입학 사제의 길을 걷게 됐다. 장 주교에게 특히
신앙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던 인물은 현재 수원교구 분당 요한본당 주임인 김
영배 신부. 음성본당 복사단장이자 선배였던 김 신부는 장 주교에게 처음으로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매일미사 참례도 김 신부의 권유 때문에 시작했
다. “매일 학교 교문까지 책보를 메고 가면서 묵주의 기도를 바쳤는데 그 기
도를 즉시 들어주셨다는 것을 75년 부제품을 받으면서 알았어요. 그때 기도지향
이 공부 잘하고 착하게 살게 해달라는 거였는데 사제가 된다는 게 결국은 공부
도 할 수 있고 거룩하고 착하게 살 수 있는 게 아니겠어요? 집안엔 농사거리도
거의 없을 만큼 무척 어려워 도저히 고등학교에 진학할 형편이 아니었는데 하
느님께서는 그때 이미 제 기도를 들어주셨던 거지요.”
광주 대건 신학대학(현 광주가톨릭대)에 입학한 장 주교는 신학교 성당에 가
장 먼저 도착해 기도를 바치는 신학생으로 꼽혔다. 성실하면서도 평범한 신학교
생활이었지만 성무부장(지금의 전례부장)을 맡아 신앙생활에 굉장히 열심이었다
는 게 동창 신부들의 전언이다. 74년 대학원 과정에 들어간 장 주교는 처음에는
성서신학을 전공하다가 교의신학으로 전공을 바꿔 ‘케리그마(복음 선포) 그
원형과 발전’이란 논문으로 신학석사 학위를 받고 76년 사제로 서품됐다.
청주 내덕2동 주교좌본당에서 3개월의 짧은 보좌신부 사목을 마치고 진천본
당 주임으로 부임한 장 주교는 ‘배티성지’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그
것은 동시에 최양업 신부와의 만남이기도 했다. 교우촌을 돌며 신자들의 증언을
일일이 녹취하고 한국교회사연구소장 최석우 신부를 만나 자료를 수집했던 열
정은 순교신심으로 이어졌다.
4년이 채 안 되는 기간의 진천본당 사목을 끝내고 보은본당으로 떠났던 장
주교가 93년 15년만에 다시 배티성지로 돌아오게 된 것도 그때의 ‘첫 마음’
을 잊지 않아서였다. 잊혀졌던 무명순교자들의 묘지를 다시 돌보고 성지에 성당
을 건립하는 한편 최양업 신부의 자료집을 펴내기 시작했다. 그 작업은 2년만에
끝났고 조만간 다섯번째 자료집 ‘배티성지와 최양업 신부’가 나오게 된다. 또
몇해전 인근 골프장 공사로 배티성지의 무명순교자 14위 묘지가 훼손될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교구와 한국평협 교구내 평신도들과 함께 성지를 지켜내는 치밀
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장 주교는 이제 23년간의 일선 사목현장을 떠나 청주교구 11만3290명(98년
말 현재)의 신자들을 이끄는 목자로서 청주교구장직에 착좌 한다. 일생을 가슴
에 품어왔던 “사람은 속으로 제 할 일을 계획해도 그것을 하나하나 이루시는
분은 야훼시다”(잠언 16 9)라는 말씀처럼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교구장의
길’을 걸어야 한다.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며.
【청주〓오세택 기자】
[장봉훈 주교 약력]
▲1947년 1월4일 충북 음성 출생 ▲66년 서울 성신고(소신학교) 졸업 ▲76년
광주 대건 신학대학(현 광주가톨릭대) 졸업 ▲76년 5월3일 사제서품 ▲76년 5∼
8월 청주 내덕2동 주교좌본당 보좌 ▲76∼79년 진천본당 주임 ▲79∼84년 보은
본당 주임 ▲84∼86년 내덕2동 주교좌본당 주임 ▲86∼91년 미국 LA 성 토마
스 한인본당 주임 ▲91∼92년 미국 영성생활 연수 ▲92∼93년 청주 신봉동본당
주임 ▲93∼99년 진천 배티성지 담임 ▲99년 6월26일 청주교구장 주교 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