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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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평양교구의 순교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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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해방시기부터 3·8선 이북지역의 교회활동을 방해하다가 6·25전쟁 을 전후한 시기에는 성직자들을 대거 희생시킴으로써 교회를 말살하려 했다. 다 음은 최근 평양교구 순교자 사료수집위원회가 공개한 자료집에 실린 평양교구
순교자 26명의 순교경위 및 행적과 명단이다.
▲ 홍용호 주교 김운삼·송은철〓평양교구장 홍용호 주교와 김운삼·송은철
두 소년은 49년 5월14일 평남 서포 감흥리(속칭 가루게) 내무서 앞에서 납치돼
행방불명됐다.
▲ 김필현·최항준 신부 강유선〓49년 6월10일 평양교구 부교구장 겸 관후 리본당 주임 김필현 신부와 교구 경리담당 최항준 신부는 평양시 인민위원회
한면수로부터 관후리성당 문제에 관해 상의할 것이 있으니 위원장실로 출두하 라는 편지를 받고 출두에 불응하다가 임의동행 형식으로 끌려가 시 인민위원회 를 거쳐 정치보위부로 연행됐다. 관후리성당 건립을 위한 기성회 상임이사였던
강유선은 함께 동행했다가 행방불명됐다.
▲ 박용옥 신부 이규식 신학생 서운석·이재호 신부〓김필현 신부가 체포된
후 교구 업무를 수행하던 대신리본당 주임 박용옥 신부는 49년 12월6일 오후 2 시부터 정치보위부원들의 평양시 인민위원회 위원장 명의 출두 요구를 거절하 며 성체를 영해주고 있었다. 이날 밤 50여명의 병력을 지원 받은 정치보위부원
10여명이 본당 신부의 연행을 저지하려는 신자들을 구타하고 박 신부를 연행했 다. 이때 예수성심회원으로 본당 일을 도맡아하던 이규식 신학생은 종을 치다가
보위부원들에게 구타당하고 실신상태에서 끌려가 행방불명됐다. 박 신부는 일단
풀려 나와 관후리성당으로 돌아왔다가 이튿날 새벽 3시 사제관을 기습한 괴한 들에게 다시 납치됐다.
관후리본당 보좌 서운석 신부도 비슷한 시간에 시 인민위원회에 끌려갔다가
풀려났으나 7일 박 신부와 함께 괴한들에게 납치됐다. 평양 기림리본당 주임 이 재호 신부도 7일 새벽 5시께 연행됐다.
▲ 조문국·강영걸·김교명·이춘근·김동철 신부〓홍용호 주교를 비롯해 대 부분의 사제들이 납치된 상황에서 교구장의 역할을 대신했던 진남포본당 주임
조문국 신부는 50년 6월25일 새벽 1시께 신자 나 요셉의 집에 은신하던 중 군
트럭을 타고 온 괴한들에게 잠옷바람으로 끌려갔다. 마산본당 주임 강영걸 신부 는 50년 6월24일 오전 9시께 연행돼 그해 9월23일(?) 평양시 인민교화소 사상범
8명과 함께 총살됐다. 의주본당 주임 김교명 신부도 이틀 뒤인 26일 새벽 2시께
정치보위부원들에게 연행돼 의주보안서를 거쳐 신의주보안서로 이송됐다가 소 식이 끊겼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지도 신부 겸 서포본당 주임으로 있던
이춘근 덕원 베네딕도회 수사신부는 25일 서포본당 순안공소에서 정치보위부원 들에게 연행됐다. 마지막으로 비현본당 주임 김동철 신부가 50년 6월27일 밤 11 시께 납치됨으로써 평양교구는 한 사람의 목자도 없는 ’침묵의 교회’가 됐 다.
▲ 홍건환·홍도근 신부〓신의주본당 주임 홍건환 신부는 49년 12월10일 밤
사제관에서 정치보위부원들에게 강제 연행됐다. 영유본당 주임 홍도근 신부도
이튿날인 11일 새벽 5시께 사제관에서 내무서원들에게 연행됐다.
▲ 장두봉 신부〓결핵으로 3년 동안 정양중 아픈 몸을 이끌고 중화본당에서
사목하던 장두봉 신부는 49년 12월7일 중화본당 검암리공소에서 성사를 집행하 고 저녁상을 받다가 박용옥·서운석·이재호 신부가 체포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검암리공소 신자 윤회식의 집으로 피했으나 은신하던 중 12일 보안서원들 에게 체포됐다.
▲ 석원섭 신부 최삼준〓강계본당 주임 석원섭 신부는 신병으로 3개월간 주 교관에서 정양한 후 49년 7월6일 본당에 도착했으나 30여시간에 걸친 고된 기 차여행으로 병이 악화돼 병석에 누워있었다. 40도를 오르내리는 신열로 인사불 성이 됐던 석 신부는 8일 간호사가 얼음을 사러 사제관 문을 열고 나가던 중
침입한 괴한들에 의해 납치됐다. 석 신부를 문병하고 돌아가던 본당 총회장 최 삼준 역시 같은 날 괴한들에게 납치되고 말았다.
▲ 이경호 신부〓48년 9월 안주본당 주임으로 부임한 이경호 신부는 50년 6 월24일 오후 3시께 정치보위부원들에게 체포된 후 안주구치소에 구금돼 있다가
유엔군의 진격으로 북한군이 후퇴할 때 정치보위부원에 의해 청천강변에서 총 살됐다.
▲ 장정온·서원석 수녀 서정요 서경석〓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초대
원장이었던 장정온 수녀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평남 대동군 재경리면 송림리 에 피신해 있던 중 50년 10월4일 오후 5시께 인민군에 의해 강제 연행돼 행방 불명됐다. 또 평양시 선교리 본가에 가있던 서원석 수녀는 50년 10월8일 밤 11 시께 납치됐으며 서 수녀의 부친 서정요는 양조회사에 파견돼 있던 정치보위부 원에게 연행돼 행방불명됐다. 서 수녀의 동생 서경석도 역시 정치보위부원들에 게 끌려가 소식이 끊겼다. 이로써 서운석 신부를 비롯해 부친 서정요 큰딸 서 원석 수녀 동생 서경석 등 일가족 가운데 4명이 순교했고 막내 서우석(요한)만 이 단신으로 월남해 사제로 서품됐으며 78년 타계했다.
▲ 강창희〓평양교구 재단 사무를 맡아보던 강창희는 45년 10월 시 인민위원 회에 찾아가 관후리성당 반환문제를 두고 밤늦게까지 격론을 벌인 뒤 친구 김 현준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주교관으로 돌아오던 중 세 발의 총탄을 맞고
피살됐다. 이로써 강창희는 북한 공산치하에서 첫 순교자가 됐다.
평양교구 순교자 명단 ▲홍용호 주교(평양교구장) ▲김필현 신부(평양교구 부 교구장 겸 관후리본당 주임) ▲박용옥 신부(대신리본당 주임) ▲강영걸 신부(마 산본당 주임) ▲홍건환 신부(신의주본당 주임) ▲홍도근 신부(영유본당 주임)
▲장두봉 신부(중화본당 주임) ▲조문국 신부(진남포본당 주임) ▲이재호 신부 (기림리본당 주임) ▲석원섭 신부(강계본당 주임) ▲이경호 신부(안주본당 주임)
▲최항준 신부(평양교구장 비서 겸 교구 경리담당) ▲서운석 신부(관후리본당
보좌) ▲김교명 신부(의주본당 주임) ▲이춘근 신부(서포본당 주임 겸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지도 신부) ▲김동철 신부(비현본당 주임) ▲장정온 수녀(영 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초대 원장) ▲서원석 수녀(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및 성모보통학교 교원) ▲강창희(야고보·평양교구 재단 근무) ▲강유선(요셉· 평양교구 주교좌 관후리성당 건립을 위한 기성회 상임이사) ▲최삼준(프란치스 코·강계본당 총회장) ▲이규식(베드로·신학생) ▲김운삼(요셉·평양 무순공업 전문학교 학생) ▲송은철(파트리치오·평양고등보통학교 졸업생) ▲서정요(프란 치스코·평양교구 서포교구청 신축공사 현장감독) ▲서경석(마르코·평양 대신 리 변전소 부소장) 【오세택 기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1999-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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