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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성지 지상순례]- 하 수난·죽음·부활의 골고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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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창문밖으로는 감미로운 보랏빛의 갈릴래아 호수가 펼쳐져 있고 그 위로 은 은한 주홍색의 신비로운 서광이 비치고 있다. 성지의 하루는 이렇게 신비롭게
밝아왔다. 한권의 책에 불과한 ‘성서’에 이 세상 모든 진리가 담겨있듯이 그
성서의 무대 이스라엘 성지 또한 진리의 땅으로 다가왔다.

내어줄 줄 모르는 죽은 바다
순례단은 예수 복음선포의 주무대였던 갈릴래아 호수를 시계방향으로 한바 퀴 돌아 요르단강을 끼고 남쪽 사해쪽으로 향했다.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광야
한가운데를 수천년 동안 마르지 않고 유유히 흘러온 이스라엘의 젖줄 요르단강 (길이 250km). 이스라엘의 중심부를 북에서 남으로 가르며 제법 큰 물길을 이 루고 흐르던 요르단강은 어느새 작은 시냇물로 변해있었다. ‘한강’의 규모에
익숙해온 우리로서는 적잖이 실망스러웠지만 바로 이 강에서 인류의 구세주가
세례를 받고(요한 1 28) ‘머리둘 곳 조차 없는’ 당신의 작은 안식처가 되었으 리라 생각하니 친근감마저 들었다.
이 요르단강이 흘러 도달하는 곳은 염도 25의 죽은 바다 사해(Dead Sea) 다. 사해는 수영을 하지 않아도 몸이 저절로 뜨는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성지순 례에 임하는 우리에게는 색다른 묵상거리가 됐다. 사해는 요르단강 물을 받아들 이지만 다른 곳으로 물을 내보내지 않는 닫혀있는 바다다. 갈릴래아 호수가 자 신의 물을 요르단강으로 흘려 내보냄으로써 항상 살아있는 맑은 물을 유지하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받기만 하고 내어줄 줄 모르는 삶. ‘죽은 바다’ 사 해는 베푸는 삶 ‘살아있는 삶’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묵상케 했다.
갈릴래아 호수와 사해를 잇는 요르단강 중심부에서 서쪽으로 자가용으로 30 여분만 가면 나자로의 무덤이 있는 베다니아가 나오고 이곳에서 10여분을 더가 면 올리브산 정상(830m)에 다다른다. 올리브산 정상에 오르면 비로소 “이곳은
영원한 나의 안식처”(시편 87)인 그 ‘예루살렘’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 다.
한번쯤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경험한 신자라면 누구나 느껴 보았겠지만 올리 브산 정상에서 예루살렘을 내려다보는 감회는 잊을 수 없는 큰 감동으로 다가 온다. ‘오직 예수’에게 인생의 모든 희망을 걸고 살아가는 신앙인이라면 예수 가 수난받고 돌아가시고 부활한 그 장소 앞에서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성도 예루살렘도 그렇지만 올리브산도 그 자체로 하나의 성지다. 예수는 이 곳 올리브산에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며 눈물을 흘리셨고(마태 23 37― 39: 루가 19 41―44) 기도하는 법을 알려주셨으며(루가 11 1―4) 승천하셨다. (루가 24 50―53) 예수가 수난 전날 피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한 곳도 바로 이 곳이다.

상인들 내쫓던 성전 그대로
순례단은 올리브산을 한걸음에 내려가 예수가 입성했다는 그 길을 따라 예 루살렘으로 들어갔다. 이름조차도 ‘아름다운 도시’라는 의미인 예루살렘에 들 어서자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다른 성지들에서와는 또다른 감흥이 밀려왔다. 예 수가 사형선고를 받고 가시관을 쓴 그 빌라도 관저는 여전히 남아 순례객들을
맞고 있었다. 예수가 채찍을 들어 상인들을 내쫓던 그 성전도 2000년 전 그대로 였다. 순례단은 헤로데왕의 궁전을 둘러 보고 골고타 언덕까지 오르며 십자가의
길 기도를 했다. 주님이 처형당하고 묻히시고 부활하셨다는 장소에 세워진 주님
무덤 성당에 들러 침묵의 기도도 올렸다. 예루살렘의 흙 돌 하나하나가 예사롭 게 와닿지 않았다. 예수의 숨결이 거리 곳곳에 녹아있는 듯 했으며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던진 당신의 사랑이 가슴깊이 와닿았다. 특히 예루살렘 순례는 예 수가 아직도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했다.
예수의 마지막 인간 삶이 이뤄진 이 예루살렘에서 불과 8km 떨어진 곳에
베들레헴이 위치해 있었다. 예수의 인간 삶의 시작과 끝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이 의외였다. 순례단은 베들레헴에서 예수가 탄생했다는 그 자리를 직 접 눈으로 확인했으며 예수 탄생 2000년의 의미를 다시한번 묵상하는 시간도
가졌다.


아바하 그리고 사메아흐

한국에서는 쉽게 와닿지 않았던 예수 탄생의 의미를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을
직접 보고서야 비로소 가슴으로 느끼게 했다. 우리가 구세주로 믿고 고백하는
예수의 삶 현장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은 2000년 대희년을 어떤 마음으로 준비할 까를 고민하는 순례단에게 ‘하느님 사랑과 평화’라는 은총을 주었다. 예수의
삶 시작과 끝이 이뤄진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은 우리에게 ‘평화로 오신’ 예수
생애의 진정한 의미를 선포해야 함을 무언으로 말하고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느낀 예수 탄생 2000년은 ‘그리스도가 선포하고 그리스도로 부터 시작되는 평화의 확산’을 위한 원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과거와 현재가 함께 숨쉬고 있는 신비의 땅 성서의 무대 이스라엘에서의 감 동 그리고 소중한 묵상의 시간들….
순례를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둘러본 이스라엘 국립박물관 입구에서 받은 인 쇄물에 적힌 한 히브리어가 유난히 가슴에 와닿았다. ‘(아바하 사랑) 그리고 (사메아흐 기쁨)’ 【우광호 기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1999-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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