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존중하고 ‘효’와 ‘가훈’을 중요시하며 가족간의 친밀한 유대를
존중하던 대가족 제도가 무너진지 오래다.
이제는 부모와 한두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 제도에서 한 걸음 나아가 자녀가
없는 부부 재혼부부 노인부부 독신 등 다양한 형태의 가정이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가정 안에서 보호되어야 할 가족들이 가정 밖으로 밀려나 소년소녀
가장 홀몸노인 편부모 가구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서 사회 복지 대상도 증가
추세다.
우리 사회는 특히 6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부터 가정문제들이 서서히 나타나
기 시작했다. 청소년들이 가정을 떠나 산업화의 ‘역군’으로 일하면서 가정에
서 배워야 할 가치들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물질우선주의로 가정의 소중함이
밀려났다. 또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으로 인공피임과 낙태가 자연스럽게 이뤄지
면서 생명경시현상도 나타나 자연 ‘가정 본연의 모습’을 잃어갔다.
급기야 1973년에는 낙태를 사실상 허용하는 모자보건법까지 제정됐다. 우리
교회는 이 무렵부터 생명과 가정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모자보건법 제정
을 막기 위해 전국기구까지 구성키로 했던 주교회의가 이를 저지하지 못하자
75년 주교회의 산하에 가정사목부를 설립하고 행복한 가정운동(행가운)을 조직
활동에 들어갔다.
이 당시 행가운 활동은 낙태와 인공피임을 막기 위해 의료진을 중심으로 자
연가족계획을 보급하는 데만 주력했다. 하지만 편리하고 손쉬운 기존의 방법과
달리 날마다 ‘기록’하고 부부간에 협조해야 하는 자연가족계획은 이미 경제
개발 논리에 따른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에 물들어 있던 국민들의 의식 속에 파
고들지 못했고 교회 전반의 관심 또한 줄어들었다.
가정문제의 뿌리를 ‘생명’에 두고 출발한 행가운의 가정 복음화를 위한
노력은 80년대 이후부터는 결혼을 앞둔 미혼 젊은이들을 위한 가나혼인강좌 개
설 청소년 순결교육 실시 등 예방교육으로 확대됐다.
또 부부일치를 통해 가정성화를 추구하는 매리지 엔 카운터(ME)의 꾸준한
활동과 함께 90년대 들어 한마음한몸운동 생명운동부 가정성화사도직 등 가정
관련 단체들이 생기고 서울 수원 등 일부 교구에서는 가정사목 전담 부서를 만
드는 것으로 발전했다.
한편 교회는 가정이 붕괴되면서 야기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정폭력문
제 상담소와 피란처 청소년상담소의 문을 열고 오갈 데 없는 이들을 위한 보
금자리를 개설하는가 하면 재가노인이나 재가 장애인을 돌보는 사회복지 활동
에도 관심의 손길을 뻗쳤다.
낙태를 비롯한 남아선호의식 가정폭력 이혼 영·유아 유기 홀몸노인 등
가정을 둘러싼 전반적인 문제로 교회의 시야가 넓어진 것은 다행한 일이다. 가
정과 사회의 현실적인 문제들과 아무런 연관없이 가정을 복음화 하기는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수록 가정붕괴 현상은 심각해지고 신자가정 또한 정신적인 가치보
다 물질적인 사고에 중심을 두어 비신자 가정이나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많다.
결과적으로 교회가 가정복음화를 위한 노력이 부족해 가정과 사회의 빠른 변화
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실제로 가정 관련 기관·단체들의 활동은 가정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인식이
부족하고 서로간의 유기적인 협조 없이 개별적으로 이뤄졌다. 더욱이 교구 차원
의 체계적인 가정사목 정책이나 지원도 부족하고 일선 본당에서는 가정이나 생
명문제를 전담할 분과도 없는 실정이다. 이는 교회가 ‘생명의 성역’이자 ‘생
명과 사랑의 친밀한 공동체’인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만큼 가정사목을 교회
의 중심사목으로 끌어올리지 못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가정과 사회구조는 더 빠르게 변화될 것이다. 새로운 100년 새로
운 1000년의 시작인 2000년 대희년을 앞두고 교회와 사회의 기초공동체인 ‘가
정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가정사목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가정이 제대로 살아야 교회도 사회도 건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연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