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신문의 창간은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의 참 평화에
대한 갈망의 소산입니다.”
88년 5월15일. ‘작은 신문 큰 언론’ 평화신문 ‘창간사’는 “진리를 빛으
로 사랑을 원동력으로 이 땅에 그리스도의 평화를 실현하는 참언론이 될 것”
을 약속했다.
주간 8면 발행체제로 소박하게 시작된 평화신문은 같은 날 창간된 한겨레신
문과 함께 가로쓰기를 채택 신문 가로쓰기의 선구적인 역할을 했으며 혁신적인
편집과 내용으로 교회내외의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동안 교회내외의 주목을 받으며 성장하던 평화신문은 편집방향의 혼선과
시행착오로 인해 창간 1년을 갓 넘긴 89년 7월30일 62호를 끝으로 휴간에 들어
가야 하는 시련을 겪었다.
이후 5개월여 동안 신문 정체성 확립을 위한 작업이 이뤄졌으며 이를 바탕
으로 같은해 성탄절에 63호 신문이 타블로이드판으로 속간됐다. 평화방송·평화
신문 이사장 김옥균 주교는 당시 속간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모시고 이 땅에 사랑 정의 평화를 실현하는데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잠시의 휴식은 더 ‘큰 걸음’을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 또 속간과 거의 동
시에 이뤄진 평화방송 라디오의 개국(FM 105.3 MHz. 90년 4월15일)은 가톨릭
종합 매스컴으로서의 출발을 알림과 동시에 평화신문의 발전을 가속화시켰다.
평화신문은 92년 4월19일자(179호)부터 판형을 변경하고 16면으로 지면을 대폭
증면 새로운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93년 5월 국내 언론 최초로 발행 부수를
공개 ‘시대를 앞서가는 언론’으로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더구나 평화
방송 케이블 TV(Ch 33)가 95년 3월 개국함으로써 평화신문은 명실상부한 가톨
릭 종합 매스컴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아가기 시작했다.
내용적으로도 이때부터 교회소식 보도는 물론이고 교회의 비전을 제시하는
심층분석 기사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사들을 소화해 내기 시작했으며 복잡
한 사회문제와 갈등 반생명적 사회현상을 가톨릭의 시각에서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등 기획기사와 칼럼을 비중 있게 다루기 시작했다. 소년소녀가장 빈
민 등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도 예외가 아니었다.
89년 성탄절의 타블로이드판 속간호가 신문의 이념과 정체성을 회복하는 출
발점이었다면 이의 결정판은 지난해 창간 10주년 특집호(제479호 98년 5월15일
자)였다. 평화신문은 창간 10주년 특집호를 통해 제호를 변경하고 단수를 종전
의 8단에서 7단으로 변경하는 등 외형적인 면에서 혁신적인 쇄신의지를 드러냈
으며 내용 면에서도 심층 교회기사와 해설 등으로 명실상부한 교회 언론으로서
의 면모를 확고히 했다.
평화신문의 이러한 발전은 변함없는 독자들의 관심과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
할 수 있었다.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을 지내오면서 평화신문은 “이 땅에 그리
스도의 평화를 실현하는 참언론이 될 것”이라는 창간사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으며 이제 그 노력들이 하나 둘 결실을 맺고 있다.
명실상부한 가톨릭 종합 매스컴의 한 축으로서 확고한 자리 매김을 한 평화
신문은 교회의 동반자로서 교회 공동체의 쇄신과 사회 복음화를 위해 더욱 힘
차게 도약하고 있다.【우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