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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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1돌 기념 르포] 원주교구 학성동본당 월송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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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월송 1리. 휘감아 흐르는 강물이 만들어 놓은 마을 모 양이 반달처럼 생겼다고 해서 ‘월호(月湖)부락’이라 불리는 곳. 원주시에서
차로 15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지만 하루에 버스가 세 번밖에 다니지
않는 외진 마을.
‘배산임수(背山臨水)’라는 말 그대로 마을 앞으로는 남한강으로 흘러 들어 가는 폭 200여m의 섬강이 고요히 흐르고 뒤편에서는 야트막한 산들이 마을을
포근히 떠받치고 있어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시골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마을 중 앙에는 지은 지 30년이 넘었다는 원주교구 학성동본당 관할 월송공소가 자리하 고 있다.

섬강이 빚은 반달모양 마을
대문도 담도 없는 공소마당에는 마을길 닦기에 사용하는 작업도구들이 한쪽 에 쌓여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마을 아이들이 온통 흙투성이가 되어 장난을 하 는 모습이 눈에 띈다. 공소 옆 비닐 온실에서는 이양재(37·시몬)씨가 아내 이 설화(27·엘리사벳)씨 마을 아주머니와 함께 손가락 크기 만한 수박모종을 박 나무에 접붙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연변 조선족 출신의 이설화씨는 이곳에 시 집온 지 벌써 5년이 됐다.
“꼼짝없이 노총각으로 늙어갈 뻔했는데 지역 국회의원의 주선으로 아내를
만났지요. 문화의 차이로 인해 가끔씩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이제는 웬만큼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양재씨가 꺼내는 이야기다. 많은 청년들이 부와 명예를 좇아 도시로 떠나 버린 마을에 젊은이라고는 거의 유일한 전 공소회장의 둘째아들인 이씨는 어머 니를 모시고 마을과 공소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한때는 이씨도 마을을 떠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외지로 나가도 별 뾰족한
수도 없는 것 같고 숨가쁘게 움직이는 삭막한 도시생활에 적응할 자신도 없어 서 농사꾼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어쩌면 이씨의 마음 한 쪽에 마을과 공소를
지키는 일이 바로 자신의 몫이라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곳 월호부락에 공소가 생긴 것은 30여년 전. 이씨의 할머니가 전교를 하고
공소를 세웠다. 한때는 60여 가구 200여명의 마을주민 중 절반 이상이 신자였 고 공소예절이나 본당신부가 가끔씩 미사를 드리러 오는 날이면 20평 남짓한
공소가 비좁았을 정도로 활기에 차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신자 15명이 공소 를 지키고 있다.

“초창기 신자들 가운데는 성당에 가면 밀가루나 옷가지 등 구호품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서 영세한 소위 ‘밀가루’ 신자들이 많았습니다. 그것을 모두 나 쁘게 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에 공소가 활기에 찼던 것도 어떻게 보면 ‘거 품’이었지요. 지금은 비록 신자가 많이 줄었고 또 젊은이들이 다 빠져나가 대 부분 노인들만 남았지만 누구못지 않은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젊은 새식구도 하나둘 생겨
지난해부터 공소회장을 맡고 있는 이강염(67·바오로)씨의 말이다. 그의 말 처럼 15명의 공소 신자들은 공소를 삶의 중심으로 여기고 살아간다. 주민 중에 는 인근 골프장에서 잡일을 하는 이들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 수박과 담배 벼농 사를 생업으로 하고 있다. 특히 수박재배는 한해 가장 큰 농사여서 요즘에는 새 벽부터 일어나 일해도 눈코 뜰 사이 없다. 그 바쁜 가운데서도 매주 공소예절을
바칠 때면 빠짐없이 나와 함께 기도를 드린다.

더욱이 최근에는 몇년 만에 경사가 생겼다. 이양재씨의 아내 설화씨가 지난 달 혼인한 지 5년만에 세례를 받았고 청각장애인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여중생 미학(16·알비나)이도 견진성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또 아직 첫영성체를
받지 않은 여고생 정옥(17·루시아)이가 본당 첫영성체 교리반에 나오고 있는
것도 공소 신자들에게는 기쁨이다. 이들이 바로 공소를 지탱하는 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가끔씩 본당신부님한테서 ‘신자가 없어서 공소를 폐지해야겠다’는 농담
섞인 말씀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지요. 그렇지만 이렇게 젊은(?) 새 식구가
생기는데 어떻게 공소를 없애겠습니까. 또 힘들더라도 우리 공소를 우리가 가꾸 어 가야지요.”
이야기를 나누다 뒤를 돌아보니 마을을 안고 흐르는 강이 한 눈에 들어온다.
재두루미와 백로가 강물에 내려앉아 먹이를 물고서는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 른다. 뒷산에서는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더없이 청량하게 들린다.


농사일 마치고 한밤 공소예절
저녁이 되자 품앗이를 갔던 마을주민 몇 사람이 섬강을 가로질러 놓인 다리 를 건너 돌아온다. 햇빛에 그을린 주민들의 얼굴은 일을 마치고 마신 술로 더욱
붉게 물들었고 술에 거나하게 취한 할아버지는 젊은이의 등에 업혀 노래를 흥 얼거린다. 서두를 것이 없는 넉넉한 모습이다. 그 정겨운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 니 입가에 절로 잔잔한 미소가 돈다.
저녁 9시가 넘어 온 마을에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고단한 하루 일을 끝내고
저녁식사후 피곤에 지친 몸을 누이고 휴식을 취할 시간. 환하게 불이 밝혀진 공 소입구에서 공소회장이 된 이강염씨가 공소지붕에 매달린 종을 치며 신자들을
부르고 있다. 농한기인 겨울이면 주일 아침 8시에 공소예절이 시작되지만 지금 처럼 농사일이 바쁠 때면 이렇듯 토요일 밤늦게 시작된다.
공소를 향한 골목 곳곳에서 성가집과 매일미사책을 든 신자들이 어둠 속에 서 모습을 나타낸다. 모두 11명이 모였다.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이순분 (80·보나) 할머니는 며칠 전 옻순을 먹고 옻에 걸려나오지 못했고 다른 몇몇
사람은 타지에 가있어서 오지 못했다.

모두 방석을 깔고 공소 마룻바닥에 앉는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함께 성호를 긋고 공소예절이 시작된다. 총무 오정례(49·미카엘)씨의 선창 에 맞춰 기도를 드리고 여고생 정옥이가 복음을 읽는다. 다섯살짜리 수민이도
어엿한 공소신자로 한몫을 한다.

신자들의 기도소리를 뒤로 한 채 공소 건물 밖으로 나왔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에 무수한 별들이 초롱초롱 눈망울을 빛내며 마을을 내리비추고 있다. 11 명이 바치는 기도소리가 밤의 적막을 깨며 하늘로 올라간다.【임동근 기자】
취재후기 바로 그곳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있었다

월송공소에서 날로 쇠락해가고 있는 우리네 시골과 또 시골공소들의 현장을
보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그러나 흙과 더불어 살아가는 순박한 교우들의 모 습에서 또 다른 것을 느꼈다. 농번기여서 정신없이 일손을 놀리며 바쁘게 지내 는 그들이지만 숨을 돌리는 여유로움이 있었다. 도시 문명에서는 맛볼 수 없는
대자연의 평화가 있었다.
푸른 5월의 산 빛과 마을을 품에 안고 남한강을 향해 흘러가는 섬강 비온
뒤 맑게 갠 파란 하늘 아래 얼굴을 검게 그을리며 땅을 통해 하느님의 창조사 업에 협력하는 사람들. 지나친 미화일까.

“도시의 본당에서처럼 신앙생활을 이끌어 주는 신부님을 자주 만나 뵐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신자들이 많아서 여러 가지 활동을 벌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지만 그러기에 더더욱 믿음의 힘으로 살아간다”는 한 공소신자의 말이 떠 오른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1999-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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