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부터 온종일 수술실과 병실을 오가며 환자들과 시간을 보내야 하는
나의 일상은 주님의 보살핌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생활이다. 외과의
사로서 매일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환자들을 대하다보면 한순간도 긴장
을 풀 수 없고 하느님께 의탁하지 않고는 평온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매일 출근하기 전 나는 아내와 함께 식탁 앞에 서서 아침기도를 드린다. 아
침기도가 끝나면 아내는 잊지 않고 전날 이야기 들었던 걱정스런 환자나 큰 수
술을 앞둔 환자를 기억하고 하느님의 손길이 수술하는 나와 함께 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아내의 이같은 기도는 언제나 내게 큰 힘이 되고 아내의 사랑
을 다시금 느끼는 기회가 된다.
나는 출근과 동시에 가장 먼저 병원 1층의 성당을 찾아 감실 앞에서 묵상하
며 모든 것을 당신께 맡깁니다 라는 기도를 반복한다. 인간적인 욕심을 버리고
성체를 마주하고 앉아있으면 새로운 용기와 힘이 생길 뿐 아니라 동료들간의
갈등도 모두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럴 때 나는 마음으로부터 내 죄의
용서를 빌고 갈등이 생겼던 이들에게 축복을 빌어주곤 한다.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나는 어릴 때 영세했지만 사실 신앙에 대해 잘 알
지 못한 채 성장했다. 그런 내가 신앙의 참맛을 알게 된 것은 가톨릭대 의과대
학에 진학하면서부터다.
1960년 가톨릭대 의과대학에 입학한 나는 곧바로 가톨릭 학생회에 입회했다.
하지만 당시 유명무실했던 가톨릭 학생회는 타종교 학생회에 비해 활동이 부진
했으며 의욕적으로 일을 추진해 가는 사람도 없었다. 이 때문에 나는 입회와 동
시에 가톨릭 학생회의 활성화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우선 동기와 선·후배들 가운데 신자를 파악하고 정기적인 모임을 만들어
친교를 쌓아갔다. 또 가톨릭 학생회를 후원해 줄 후원자를 물색하던 중 당시 성
모병원장 양기섭 신부님을 찾아가 명색이 천주교 재단 대학인데 가톨릭 학생
회가 이렇게 유명무실해서 되겠습니까 하면서 가톨릭 학생회를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학교의 적극적인 지원을 부탁했다.
각 반별로 셀 모임을 만들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회원들은 가톨릭 학
생회의 주된 활동을 무의촌 의료봉사로 결정하고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를 중심
으로 무료진료에 들어갔다. 바쁜 의대생활 중에 황금 같은 주말시간을 봉사에
헌납하면서도 회원 모두는 찡그리는 낯빛 한번 비치지 않았고 오히려 즐거운
모습으로 기꺼이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또 회원들은 비신자들의 입교를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다. 가톨릭 학생회
지도 신부께 예비신자 교리를 부탁하고 하나씩 친구들을 입교시켜 갔다. 회원들
의 이같은 노력과 함께 신자는 아니지만 의료봉사에 참여했던 많은 친구들은
봉사활동 중에 점차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해 갔으며 스스로 하느님의 자녀
되기를 바라기도 했다.
가톨릭 학생회의 의료활동은 주로 외국에서 들어온 구호약품을 지원 받아
이루어졌다. 부족한 약품과 의료장비들을 대신해 환자 한사람 한사람을 온 마음
으로 열과 성의를 다해 대했다. 이 때문인지 고통 속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던
환자들이 완쾌돼 다음 번 진료 때 찾아와서는 연신 감사의 뜻을 전했다. 특히
치료를 받고 완치된 한 주민이 학생들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너무 고맙
다. 꼭 좋은 의사가 돼달라 는 말을 건넬 때는 가슴 뭉클한 보람을 느끼곤 했
다.
가톨릭학생회 활동은 내게 신앙의 참맛을 느끼게 해주었지만 내가 신앙의
깊이를 더하게 된 것은 일곱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는 특이한 경험을 하면서부
터다. 이 가운데 특히 지난 82년 겨울 늦은 밤 귀가하던 길에 잠수교에서 일어
났던 교통사고는 겸허함과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신비를 깊이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한번도 환자가 되어보지 못했던 나는 큰 수술을 마치고 한 달여
입원생활을 하면서 환자의 아픔이나 괴로움 심적인 고통도 생생하게 체험하게
되었다. 또한 회복될 때까지 기도해주고 찾아와 위로해주었던 여러 친구들 동
료들 사제들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이 사람을 통해 전해짐을 새삼 느낄 수 있었
다. 특히 아내의 헌신적인 간병과 굳은 믿음은 나를 다시 살려내는 원동력이 됐
다.
교통사고 이후 나는 수술 전 항상 주님께 환자의 쾌유를 위해 기도하게 됐
다. 그 중에서도 어려운 수술일 경우에는 기도시간도 길어진다. 기도의 힘 때문
일까. 간혹 수술을 하면서 작은 기적을 경험하곤 한다. 몇 주전에도 수술도중
갑자기 심장이 멎어버린 50대 남자 환자를 성모송을 외우면서 심장마사지를 한
결과 심장이 다시 뛰는 기적을 경험했다. 물론 그 환자는 수술 후 며칠 뒤 운명
을 달리 했지만 내게 생명의 신비 즉 하느님의 섭리를 일깨워주고 갔다.
30여년간 외과의로 생활하면서 항상 내가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말 가운데
하나는 사람의 생명은 하느님의 것이지 의사의 것이 아니다 는 것이다. 자칫
의사가 환자의 모든 병을 고쳐주고 생명을 좌우한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이는 큰 오판이다. 의사는 단지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곁에서 도와드릴 뿐이다.
이런 신념은 지금까지 의사로 내 모습을 지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내 신앙의 바탕이 됐던 것은 꾸준한 기도와 가톨릭 학생회 활동 당시 노기
남 대주교님이 로마에 다녀오면서 선물해주신 묵주다. 숱한 고비 때마다 나는
주머니 속의 묵주 알을 굴리며 성모송을 마쳤다. 또 코팅해 주머니에 넣고 다니
는 예수의 샤를르 후코 작은 형제회의 스스로를 내어 맡기는 기도문 역시 큰
위안을 주었다.
10년간 내 주머니에서 떠나지 않고 나의 마음을 위로해 준 이 기도문은 내
삶이 나의 의지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의지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믿음을 다져주
곤 한다.
아버지/이 몸을 당신께 바치오니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저를 어떻게 하시
든지 감사 드릴 뿐/저는 무엇에나 준비돼 있고/무엇이나 받아들이겠습니다/아버
지의 뜻이 저와 모든 피조물 위에 이루어진다면/이밖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내 영혼을 당신 손에 도로 드립니다/당신을 사랑하옵기에 이
마음의 사랑을 다하여 제 영혼을 바치옵니다/하느님은 내 아버지이기에 끝없이
믿으며/남김없이 이 몸을 드리고 당신 손에 맡기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저의 사
랑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너무도 빈약한 내 믿음이 기사화 된다는 것에 심한 부끄
러움과 함께 마치 사제 앞에서 고해성사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
다. 하지만 아직까지 온전히 내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지 못하고 갈등 속에서
생활하는 내 신앙이 이번 기회를 통해 새롭게 거듭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약력]
▲1941년생 방배4동본당
▲1966년 가톨릭대 의과대 졸업
▲1977∼79년 미국 뉴욕대 메디컬센터 연수
▲현재 강남성모병원 외과학교실 주임 교수 겸 강남성모병원 외과장
▲대한혈관외과학회 부회장
▲대한이식학회 학술위원장
▲미국 외과학회 정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