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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주일] 나는 이렇게 부르심에 응답했다 = 예수회 유시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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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 서울대 고려대 대학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법학 전공자 법원사 무관(5급 공무원)으로 춘천·강릉·원주지방법원에서 근무 장래 희망 법관 나이 37세….
출세·명예·권력을 한 손에 움켜 쥔 이 젊은이는 그러나 하느님의 부르심 앞 에 아무런 미련없이 자신의 꿈을 접고 수도자의 길을 택했다. 예수회 소속 유시찬 (46·수원 말씀의 집 관장)신부. 그가 수사신부가 되기까지 살아온 삶은 마치 한
권의 소설과 같다.
어릴 때부터 법관을 꿈꾸며 항상 상위권을 맴돌던 그에게 있어 신앙은 사치품 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군 생활을 시작할 때까지 철저한 무신 론자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이없는 생각이지만 당시 저는 공부 못하는 사람은 사람도
아닌 것처럼 생각했어요. 한마디로 공부만 할 줄 알았지 인간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었던 겁니다. 그러니 신앙인을 보면 신앙을 가진 사람이 그것밖에 안 되느냐 고
비웃곤 했지요.

그러던 그가 군 생활 중에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법관을 꿈꾸며 여러 번 사법고시에 응시했지만 그때마다 떨어졌어요. 마침 사 귀던 여자친구와도 사이가 멀어져 저는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한 사병이 건네준 개신교 책자를 보고 교회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 요.

거듭되는 실패와 좌절 속에서 인간적 안식처가 필요했던 그는 제대 후 장로교 에서 세례를 받고 그때부터 술·담배도 끊은 채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살면서 다 시 사법고시에 응시했다. 그러나 또 실패의 쓴잔을 마신 그는 잠시 방황하다가 마 침 법원사무관 채용시험에 합격 춘천지방법원으로 발령을 받아 공직생활을 시작 하게 된다.
강릉지방법원 근무 시절 직원들과의 불화로 술·담배를 다시 시작하며 교회에
발길도 끊었던 그는 동해등기소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심 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등기소 직원이 근무시간 중에 책을 보고 있기에 혼내준 뒤 책을 빼앗 아 제 사무실로 들어와 읽기 시작했어요. 이해인 수녀의 시집이었습니다. 마지막
책장을 넘긴 순간 저는 충격을 받았어요. 저자의 영혼은 새하얀 반면 제 영혼은
너무 새까맣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또 이렇게 맑은 영혼을 꽃피울 수 있는
가톨릭에 대해 몹시 궁금했어요.

권력과 명예에 대한 강한 욕망에서 벗어나 진리에 대해 서서히 눈뜨기 시작한
그는 즉시 성당으로 찾아가 1987년 세례를 받았다. 이후 일반 신자들이 어렵다고
읽기를 꺼리는 데레사 성녀의 완덕의 길 영혼의 성 등 모든 신심서적과 교리서 적을 통독하며 신앙에 젖어들 무렵 그는 성소의 길을 선택하게 되는 결정적인 사 건을 맞게 된다.
87년 당시 그는 독재정권의 종식을 위해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에
동참하는 바람에 춘천지원 조사관으로 좌천되고 만다. 공무원이 반정부 서명운동 에 동참했다 는 이유로.
이때부터 저는 매일 새벽미사에 참례하고 성체조배를 하면서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봤습니다. 입으로는 사도법관 고(故) 김홍섭 판사처럼 살겠다고 떠벌리면서 내 면으로는 세상 권력과 명예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으로 가득찬 자신을 발견하고 하 느님 앞에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이때도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으니까요.

가톨릭에 입교한 후 여러 서적을 통해 수도자의 길을 알고 있던 그는 이 사건 이 있은 뒤 예수회 문을 두드렸고 1990년 37살 늦깎이로 수도생활을 시작해 지난
97년 사제로 서품됐다.
예수회 입회 지원서를 놓고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 자신도
모르게 지원서를 작성하고 말았어요. 그런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평화가
제 몸을 감쌌고 더 신기한 것은 사법고시에 대한 미련이 씻은 듯이 사라지는 거 예요. 사법고시에 응시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떨어지고 나면 미련이 남게 마련이 거든요.

그래서 유 신부는 예수회 입회 후 여태껏 한번도 자신의 성소에 대해 의심해
본적이 없다고 확신에 찬 대답을 했다.
저는 제 자신을 의지 박약아 라고 부르지요. 제 의지와 가치 기준을 가지고
성소를 택한 것이 아닌 하느님의 뜻에 이끌려 수도자가 됐고 저는 이 길을 준비 했을 뿐이니까요. 제 삶 속에 하느님의 섭리 역사가 절절히 배어 있었음을 이제야
깨닫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삽니다.

성소자들을 위해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까지도 스스럼없이 드러낸 유 신부는 마 지막으로 하느님을 향한 인격적 사랑에 대한 강한 열망이 있을 때 성소는 지속될
수 있다 며 성소는 자신의 현세적 욕구와 하느님의 부르심 사이에서 양자택일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하느님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그 위에 각자의 개성을 살릴 때
올바른 것이 된다 고 강조했다. 【박주병 기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1999-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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