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 3급 장애인 신승숙(51·리타리아)씨는 요즘 매일같이 서울 서초구 방배
동에 위치한 장애우 실직자 모임터를 찾는다. 이곳을 찾은 지 벌써 두 달이 돼
가지만 아직도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눈에 띄지 않는다. 매일같이 이곳에 와
서 게시판에 붙은 구인정보를 보고 상담도 해보지만 그녀에게는 벅찬 일들뿐이
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어렵지 않게 생활했던 신씨. 그러나 사업이 부도난 후 남
들에게 빚진 돈을 갚을 엄두도 내지 못한 채 하루하루 살아갈 일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날이 갈수록 막막하기만 하다.
신씨는 지난 90년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다쳐 3급 장애인이 됐지만 96
년초까지는 실내장식업을 하면서 그런 대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돈줄이
풀리지 않으면서 부도가 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올라앉게 됐고 남편
과도 갈라서는 처지가 됐다.
한동안 친척들의 도움으로 근근히 지냈으나 마냥 그들의 도움에 의지할 수
만 없어 혼자 살아갈 길을 찾아 나섰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부케나 꽃바구니를
만들어 파는 마케팅 꽃꽂이. 그러나 일을 배우는 과정에서 IMF의 한파가 닥쳐
왔고 기술만 배우면 채용하겠다던 회사측으로부터 사정이 어려워 채용할 수 없
다는 통보를 받았다.
힘닿는 일이면 무엇이든 해보겠다고 생각했지만 처음 시작한 일부터 어려
워지자 입안이 바싹바싹 타기만 했습니다.
재기의 의지가 여지없이 꺾이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앉아만 있
을 수도 없었다. 다시 찾아 나선 일이 보험회사의 생활설계사. 그러나 한쪽 다
리를 저는 불편한 몸으로 하루에도 수십 곳을 다녀야만 하는 그 일이 그녀에게
는 처음부터 무리였다.
몸도 말이 아니었지만 더욱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절름거리는 저를 바라보
는 시선이었습니다. 8개월을 다니다가 몸과 마음이 모두 견디지 못해 그만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일거리를 찾아 헤매다 지난해 7월 인력은행의 알선으로 한 제지회사에
전화를 통해 물건을 파는 텔레마케터로 어렵사리 취직을 했다. 하지만 하루 종
일 앉아서 전화통화만 하다 보니 청각에 이상이 생겼고 몸도 계속 약해져만 갔
다. 결국 3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나왔다.
그래도 운이 좋아 신씨는 장애인 고용촉진공단으로부터 컴퓨터로 자료를 입
력하는 일을 받을 수 있었다. 3개월 동안은 신이 나서 열심히 일했으나 자료 입
력을 마치고 나자 다시 실직자 신세가 됐다.
몸만 건강하다면 식당에서나 파출부로라도 일을 할 수가 있겠지요. 그러나
저같이 성하지 않은 사람을 누가 써주겠습니까.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이
렇게 힘들 줄 몰랐습니다.
한동안 좌절하고 있다가 지난 2월 다시 용기를 내어 찾은 곳이 장애우 실직
자 모임터였다. 와서 보니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장애인들이 많
았다. 컴퓨터도 배우고 법률상담도 받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서로가 어려운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위안이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도 견디기 힘들지만 그보다는 저 같은 장애인을 냉대
하고 소외시킬 때 더 견디기 힘듭니다. 특히 같은 믿음을 가진 신자들로부터 냉
대를 당할 때에는 정말로 참기가 어려워요.
신씨는 현재 강남 가정복지센터에서 두 달 과정의 발관리 강의를 듣고 있다.
불편한 몸으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것뿐이라는 생각에서 이 과정
을 택했다. 수입이라곤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에서 지급하는 한달 10만원의 지원
금이 전부이고 그나마 3개월 후면 그 지원금마저 끊기게 되지만 그래도 발관리
과정을 마치고 나면 뭔가 일거리를 구해 돈을 벌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본
다.
그래도 가장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곳은 하느님 곁이더군요. 하느님께 기도
를 바치고 있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닥치는 시련에 자꾸만 눈물이 앞을 가로막
지만 마음의 평화와 새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곤 합니다.
오늘도 아무런 소득없이 장애우 실직자 모임터 문을 나서지만 신씨는 서로
어깨를 기댈 수 있는 동료 장애우들과 말없이 지켜주시는 하느님을 생각하며
힘과 용기를 얻는다. 【임동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