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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격을 받고 쓰러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병원에 실려가는 모습. CNS 자료사진 |
이탈리아 의회 미트로킨조사위원회가 198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저격은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가 직접 지시한 것이라고 발표함에 따라 이 사건의 진실에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사위원회는 최근 동유럽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교황에게 불만을 품은 브레즈네프가 소련군 정보국(GRU)에 암살지시를 내리고 옛 동독과 불가리아 정보기관이 이 지시에 따라 함께 공작을 벌인 것 이라고 밝혔다. 이 사건은 현장(성 베드로 광장)에서 체포된 터키 출신 저격범 알리 아그자가 계속 입을 다물고 있어 배후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아직 옛 소련 측의 공식 반응은 없으나 사건 전후 교황 움직임과 정황을 살펴보면 조사 결과는 신빙성이 높다는 평가다.
▶공산주의 몰락의 보이지 않는 손
교황은 1978년 바티칸에 들어가자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온 생각을 조용히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먼저 체코슬로바키아ㆍ헝가리ㆍ라트비아 등 공산권 주교들에게 복음에 어긋나는 공산정권의 압제에 용감히 맞서라고 촉구했다.
교황은 이듬해 조국 폴란드 방문길에 오른다. 소련 수뇌부는 폴란드 공산정부에 방문을 허락하지 말라고 압력을 가했지만 공산정부는 여론에 밀려 어쩔 수 없이 교황을 받아들였다(공산주의의 최대 실수는 이때 교황이 폴란드에 발을 내딛도록 허락한 것이라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교황은 30만 군중이 모인 미사에서 공산정권을 자극하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 교황의 첫 방문은 TV로 전국에 생중계됐다.
1980년 8월 폴란드 노동자 파업이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특히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그다니스크 레닌조선소 노조 파업이 격렬했다. 조선소 정문에는 교황 사진과 폴란드의 어머니 블랙 마돈나(검은 성모) 사진이 걸려 있었다.
교황은 성 베드로 광장에서 폴란드 순례자들과 기도를 올리며 파업을 지지했다.
그날 저녁 폴란드 정부는 공산권 최초로 독립노조 설립을 인가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유명한 솔리데리티(자유노조) 탄생이다. 솔리데리티 운동이 주변 공산국가에 영향을 미치자 모스크바는 사태가 더 악화되면 폴란드로 진격하지 않을 수 없다 고 위협했다.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취임 직후 독실한 신자로 알려진 미 중앙정보국(CIA) 윌리엄 케이시 국장이 바티칸에서 비밀리에 교황을 만났다(이 만남은 10년 뒤 세상에 알려졌다). 교황이 냉전 균형을 깨뜨릴 힘을 갖고 있음을 레이건 정부가 간파한 것이다. 또 동구권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교황의 조국 폴란드가 무너지면 연쇄붕괴는 당연한 수순이라는 게 미국측 계산이었다.
당시 폴란드는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웠다. 자유노조운동이 격화될수록 소련의 위협도 강도를 더해갔다. 교황은 소련ㆍ동독ㆍ체코 등지에서 병력 수만명과 중화기가 폴란드 국경으로 이동하는 미 정보국 사진을 받아들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폴란드 2차 방문(83년 6월16일)을 계획한 것은 그때부터다.
교황과 레이건은 82년 6월 처음 만난 자리에서 동구 공산주의 붕괴에 대한 공감대를 확인했다. 두 사람은 무력봉기가 아닌 선전선동술로 대항해야 한다 며 유기적 협조체제를 구축해 자유노조를 지원했다.
몇년 뒤 타임지는 두 사람의 이날 만남을 얄타협정으로 분할된 유럽을 재편해야 한다고 믿었던 이들이 맺은 신성동맹(Holy Alliance) 이라고 평가했다.
▶성베드로 광장에 울려퍼진 총성
그러나 두 사람이 만나기 1년 전에 연이어 총격사건이 발생한다. 81년 3월30일 레이건이 괴한에게 저격당한데 이어 5월31일 교황도 아그자에게 총격을 받았다.
그런데 총알은 똑같이 두 사람 동맥을 불과 몇 밀리미터(mm) 비켜 지나갔다.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레이건은 훗날 자신과 교황이 암살범의 총탄을 맞고도 살아남은 것은 공산주의를 패배시켜야 하는 임무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교황 저격 배후에 소련이 있다는 주장은 사건 직후부터 흘러 나왔다.
▶동구권을 휩쓴 자유화 물결
교황은 2차 폴란드 방문에서 야루젤스키 공산당 서기장과 협상을 벌였다. 교황이 바티칸으로 돌아간 직후 폴란드 계엄령이 해제됐다. 이후 폴란드 자유화 물결은 동구권 전체를 휩쓸었다. 헝가리가 국경을 개방했다. 동독에서는 수십만 군중이 대정부 시위에 나서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다. 불가리아에서는 독재자가 추방됐다. 마침내 교황은 89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을 바티칸에서 만났다. 세기의 만남 으로 기록된 조우(遭遇) 뒤 소련 소비에트 체제는 붕괴됐다.
역사의 물꼬를 돌린 교황의 역할은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복음의 진리를 행동으로 증명한 것이다.
저격범 알리 아그자는 2000년까지 이탈리아 교도소에서 복역하다 터키로 이감돼 석방됐으나 또 다른 혐의로 재수감됐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