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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부터 한달간…기념엽서도 제작
100년 전 명동성당은 어떤 모습일까?
빌딩 숲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여전히 그 위용을 드러내며 한국교회를 상징하는 현재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서울 명동본당(주임 박신언 몬시뇰)은 9월 17일부터 10월 15일까지 한달 간 성당 벽돌 보수공사 전시관에서 ‘명동대성당 100년 역사 사진전’을 연다.
이번 사진전에서는 1892년 정초식 직후 부지전경부터 1898년 축성식, 1920~30년대 전경, 1950년대 성당 최초 칼라 사진, 현재의 보수공사까지 총 50여점의 사진이 전시된다.
강산이 열 번이나 바뀌고 사람도, 시대도 변했지만 꿋꿋이 한 자리를 지키며 한국교회의 심장으로 자리매김해 온 성당의 면면(面面)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본당은 전시 사진 중 10점을 선정해 기념엽서도 제작했다.
사진전 개막식은 9월 17일 오전 11시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문의 02-774-1784 명동본당 사무실
◎명동성당은?
국내 첫 고딕양식 건축물 현재 외벽 등 보수공사 중
명동성당은 건축면적 427.14평, 연면적 612.65평에 외곽길이 68m, 외곽 폭 29m, 건물높이 23.48m, 종탑높이 47m로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첫 고딕양식 건축물’(사적 제258호)이다.
성당이 자리 잡은 언덕의 옛 지명은 종현(鐘峴). 이곳은 한국교회 최초 순교자 김범우가 신앙집회를 열었던 명례방 바로 옆이다. 수도 서울의 중심에 있을 뿐 아니라 한국교회의 발상지이자 첫 순교자의 신앙이 꽃 피웠던 곳에 들어섰다는 점에서 성당이 갖는 의미는 뜻 깊다.
1892년 정초식을 가진 성당은 완공되기까지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부지매입을 담당했던 제7대 교구장 블랑주교와 설계, 공사감독을 맡았던 코스트 신부가 완공을 보지 못하고 선종했다. 인부들의 부상과 자금난에 공사가 몇 차례 중단되기도 했다. 하지만 파리외방전교회의 재정지원, 신자들의 헌신적인 노력봉사와 헌금으로 명동성당은 6년만인 1898년 완공됐다.
성당은 1898년 5월 29일 성령강림대축일에 주한외교사절과 조선정부 관리들, 프랑스 선교사들, 한국 신자 등 3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축성식을 갖고,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봉헌됐다.
현재 명동성당은 보수공사가 한창이어서 잠시나마 본래 모습을 숨기고 있다.
하지만 공사가 한창인데도 불구하고 성당을 찾아와 기도하는 신자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보수공사에 힘을 보태고자 벽돌 한 장을 봉헌하는 신자들도 줄을 잇고 있다.
새롭게 단장한 명동성당이 많은 이들이 찾아와 기도하며 영혼을 위로받는 장소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사진설명
▶ 1926년 남산쪽에서 바라본 명동성당과 주교관의 모습. 우뚝 서 있는 명동성당의 모습이 교회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손색이 없다.
▶ 1892년 정초식 직후 대성당 부지 전경.
▶ 남산에서 본 전경. 앞쪽에 보이는 운동장이 신식군인들의 연무장.
▶ 1898년 5월 29일 축성식 후 성직자, 정부고관, 외교사절 등이 기념촬영했다.
▶ 완공직후인 1899년 명동 거리 모습. 멀리 성당과 주교관이 보인다.
▶ 1930년대 전경. 일본식 가옥이 성당 아래에 들어서 있다.
▶ 명동성당을 촬영한 첫 칼라사진. 1950년 후반에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 1910년경 계단 공사가 끝난 후 모습.
이승환 기자
swingle@catholictime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