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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복음화 대들보로 '한세기'

대전교구 조치원본당 노송공소 '100년사'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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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에서 드물게 공소사(公所史)가 나왔다. 대전교구 조치원본당(주임 윤영균 신부) 노송공소가 발간한 「노송공소 100년사」다.

 노송마을에 천주교가 전래된 것은 한ㆍ불조약(1886년)으로 신앙 자유를 얻은 후이지만 첫 신자가 탄생한 것은 배영호(안토니오)와 김동면(레오)이 세례 받은 1901년이다. 공소는 1905년 설립됐다.

 노송 지역 전교는 초기엔 두 신자 가족, 친척 중심으로 이뤄지다가 다른 주민들에게 확산됐다. 「노송공소 100년사」엔 공소 신자들의 깊은 신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노송리 김동면의 장손 김기철이 기와집을 지을 때 대들보에 `천주강생 1943년 3월15일 간좌`라고 적어 신앙적 표현을 하자 이를 눈여겨 본 일본 순사는 소화(昭和) 연대로 고치라고 했다. 그때마다 (김기철은) 고쳐 적는다면서 순사를 융성하게 대접해 보냈다. 지금까지 대들보엔 천주강생이란 신앙적 표현이 남아있다."

 노송공소는 교회 역사와 함께하면서 공주본당을 시작으로 옥천본당, 대전본당(현 대흥동주교좌본당), 청주 북문로본당(현 서운동본당)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1955년 지금의 조치원본당 소속이 된 이후 본당 신부가 자주 공소를 방문하고 예비신자 인도에 노력을 쏟아 신자수가 두자리수에서 세자리수로 넘어섰다.

 신자 수가 증가하자 50년 이상 공소 예절을 바쳐온 공소 회장 집이 비좁아 별도 공소 건물이 필요했다. 공소 신자들은 하느님 백을 든든한 후원자로 믿고 땀과 정성을 모아 1963년 15평 규모 건물을 지었다.

 하지만 이 건물도 늘어나는 신자수를 감당하지 못해 1971년 새 건물을 건립했다. 또 이 무렵에 공소 사목협의회, 대건회, 부인회를 조직해 공소 주변 제초작업, 농번기 일손돕기 등 봉사활동에 앞장섰다. 공소 주보도 발행하고 주일학교도 초등부, 중등부를 별도로 운영할 정도로 활발했다. 신자수는 1980년대 초반까지 185명선을 유지했다.

 노송공소 지역은 한때 130여가구가 살던 마을이었으나 이농현상으로 지금은 80가구로 줄었고 이 중 절반이 신자 가구다.  60살이상 신자 비율은 40로 농촌 고령화를 그대로 드러낸다.

 「노송공소 100년사」는 이러한 공소 역사를 이 지역 천주교 전래, 교세변화, 외형적 변화, 사진으로 본 100년, 공소 신자 회고담, 사진을 곁들인 공소 가족현황 등 8장에 걸쳐 470쪽에 담았다.

 김창호(아우구스티노) 공소회장은 발간사에서 "한국천주교 발전은 초기에 공소를 통해 이뤄졌다"며 "이 기록을 통해 우리 신앙을 되돌아보고 나아가 확고한 신앙적 삶을 영위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는 "노송공소는 충청지역 복음화 대들보이자 큰 그늘 역할을 한 귀한 공동체"라며 100년사 발간을 축하하고 "미래 후손들에게도 우리 현재 삶이 좋은 모범이 돼 신앙 역사를 계속 기록해 전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연숙기자mirinae@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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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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