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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레스를 입고 화관까지 쓴 하오라본당 어린이들이 손을 모으고 첫 영성체를 준비하고 있다.
▶ 앤시 티르키의 첫 영성체를 축하하기 위해 종교는 달라도 이웃 주민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 미사에 참례한 본당 신자들이 캘커타교구에서 발행하는 신문을 사고 있다.
캘커타교구는 세계교회와 교구소식을 담은 신문을 매주 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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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라본당 한 해 영세자 한 두명에 불과
가난과 소수 종교 어려움 믿음으로 극복
주일 이른 아침인데도 하오라 역은 릭샤(Rickshaw, 자전거 뒤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바퀴 달린 의자를 붙여놓은 3륜차) 하나 지나기 벅찰 만큼 혼잡했다. 애초 약속했던 100루피에 20루피(1루피 한화 25원)를 더 얹어 달라는 릭샤꾼과 흥정 아닌 흥정으로 진을 다 뺀 다음에야 캘커타교구 하오라본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영어로 봉헌되는 8시30분 미사를 앞두고 성당 마당은 신자들로 북적거렸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운 좋게도 이날은 본당에서 가장 큰 행사가 열렸다.
어린이 25명이 첫 영성체를 하는 날이다. 부활이나 성탄 등 특별한 행사 때 한복을 입는 한국처럼 인도 신자들도 이날은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치장에 신경을 쓴 모습이다. 첫 영성체를 하는 아이들은 순백색 드레스에 화관까지 쓰고 성당 맨 앞자리에 앉았다.
첫 영성체를 위해 제대 앞에 선 아이들과 사진기로 아이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 자리다툼을 하는 부모들의 모습은 한국을 꼭 빼닮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처음으로 받아 모신 아이들을 축하하는 박수소리가 성당을 가득 채운다.
미사 참례 신자가 1000 여 명인 하오라본당은 콜카타에서도 비교적 큰 본당으로 1831년 설립됐다. 하지만 신자 수는 수십 년 째 변하지 않는다. 줄지 않지만 그렇다고 늘지도 않는다. 한 해 세례를 받는 신자가 고작 한두 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종교의 나라답게 인도 사람 대부분은 종교를 갖고 있다. 또 사람들은 힌두교 또는 이슬람교에서 개종하는 것 자체를 생각하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다고 여긴다.
콜카타는 종교차별이 심한 인도 북동부 지역에 비해서는 종교 자유가 비교적 보장돼 있지만 힌두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금기시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열리는 첫 영성체 행사는 교회의 미래를 이끌어갈 새 신자들이 태어나는 자리여서 큰 의미를 지닌다.
올해 아홉 살인 앤시 티르키(Ancy Tirkey, 아녜스)도 이날 첫 영성체를 했다.
성당에는 앤시의 아버지 어거스틴과 어머니 수치트라 뿐 아니라 할아버지와 삼촌, 이모 등 대가족이 함께 모여 앤시의 첫 영성체를 축하했다. 사진을 찍어 준 덕분에 초대를 받아 첫 영성체를 자축하는 작은 잔치가 열린 앤시의 집을 방문할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40여분 만에 도착한 앤시의 집은 단칸 셋방이었다. 벽에는 지난 여름 홍수 때 차오른 물의 흔적이 남아있을 정도로 집은 좁고 누추했다. 앤시가 사는 발리트 이쿠리(Balit-ikuri) 마을은 여름 우기 때면 한 달에 수차례 허리까지 물이 들어찬다. 하수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그때마다 앤시 식구들은 피난을 간다.
고등학교 교사인 아버지 어거스틴의 한 달 월급은 2200루피(한화 5만5000원). 스스로 중하류계층에 속한다고 말했다. 두 평 남짓한 방에서 앤시는 부모님과 함께 산다. 식탁을 겸해 쓰이는 침대가 방의 절반을 채우고 있다. 앤시 가족을 비롯해 총 열 가족이 방만 따로 쓸 뿐 한 집에 살고 있었다. 식구가 셋이건 다섯이건 한 방에서 함께 자고 생활한다.
2500여명이 살고 있는 발리트 이쿠리 마을에 가톨릭 신자는 앤시 가족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힌두교를 믿는다.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는 경우는 없어요. 모두가 어렵고 힘들게 살기 때문에 종교와는 상관없이 서로 돕고 나누죠.”
어거스틴은 일 년에 한 번씩 각 종교 신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종교화합을 위한 대회도 열린다며 마을의 유일한 신자이기 때문에 오히려 책임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내가 왜 성당에 다니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럴 때마다 신앙심을 더욱 굳건히 하고 교회에 대해 공부를 더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믿는 종교가 무엇인지 이웃들에게 잘 이야기해줘야만 함께 살 수 있어요.”
앤시의 첫 영성체를 축하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브라마와 비슈누, 시바 등 제각각의 신을 모시던 힌두교 신자들도 이날만큼은 앤시의 집에 모셔진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바치고 앤시의 건강을 기원했다. 어거스틴은 신문지로 말아 침대 밑에 고이 간직해 뒀던 위스키도 꺼냈다. 오랜만에 마신 술 덕분인지 어거스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형편은 넉넉지 못하지만 공부를 더 시키고 싶어요. 앤시만큼은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요.”
발리트 이쿠리 마을 사람들은 자식들 특히 딸을 일찍 결혼시킨다. 14살 늦어도 17살 이전에 시집을 보낸다. 부양할 식구를 줄이기 위해서다. 가난하기 때문이다.
여자인데다 가난하고 종교도 다르다는 점은 앤시가 앞으로 이겨내야 할 어려움들이다. 앤시 뿐 아니라 인도의 모든 신자 가족들이 겪는 고통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앤시의 가족들은 신앙의 끈을 놓지 않는다. 4대째 내려오는 신앙을 이어가며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우리는 참 편하게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편하고 불편하고의 차원을 넘어 공기처럼 신앙을 여기지는 않았는지 앤시의 집을 나서며 생각해본다.
◆인도 종교차별 사례
세례명 있으면 취업도 힘들어
“이름에 세례명이 있으면 직업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너희는 인도인인데 왜 외국의 종교를 믿느냐는 데서 차별은 시작되고 심할 때는 폭력을 가하기도 했어요. 단지 십자가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였죠.”
사랑의 선교 수사회 피터 물무 수사는 불과 십 여 년 전만 해도 소수종교 신자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다며 교회 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도 심각한 문제였다고 말했다.
현재 신자가 비교적 많은 인도 서부와 남부 해안지방 등 대부분의 지역에서 직접적인 종교차별은 사라졌지만 아직까지 북동부와 내륙지방에서는 성직자와 평신도들에 대한 과격 힌두교, 이슬람교 신자들의 테러와 협박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인도 중부 안드라 프라데쉬주에서는 지난 해 6월 25일 환자 방문을 가던 사랑의 선교회 수도자 세 명이 납치됐다 가까스로 풀려났으며, 이에 앞서 6월 22일에는 같은 지역에서 개신교 목사가 피살됐다.
특히 적극적으로 선교에 나서는 개신교로 인해 가톨릭 신자들까지 덩달아 피해를 보고 있다. 과격 힌두교 신자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