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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 일곱 살이면 할머니로 불리는 것이 보통이겠지만 `이 분을 정말 할머니라 불러야 하나` 싶다.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할머니, 인기 블로그(
http://kr.blog.yahoo.com/ropa420kr) 운영자, 암벽 등반에, 무박 산행에, 온갖 산들 종주에, 네팔과 안나푸르나 트레킹까지 주저하지 않는 황경화(안나, 인천교구 부평4동본당) 할머니. 진부한 말이긴 하지만 황안나 할머니에게 나이는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하다.
황씨가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은 `그 나이에 웬…` 이었다. 50살에 운전면허를 따겠다고 할 때도, 50대 중반에 컴퓨터를 배울 때도, 60대가 넘어 놀이동산에서 바이킹을 타고, 62살에 겨울 지리산을 혼자 아이젠을 신고 종주에 도전할 때도 그랬다. 젊은 나이에는 하고 싶어도 못 했던 일들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지금 나이가 너무 좋다고 한다.
2004년 봄 64살에 전남 해남 땅끝 마을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도보로 2000리(약 800㎞) 국토종단 길을 23일에 걸쳐 혼자 걸을 때도 주위 사람들은 나이를 거론하며 만류했다. 그러나 황씨는 당차게 한마디를 던지고는 배낭을 짊어지고 나섰다. `내 나이가 어때서?`
황씨가 가장 기피하는 것은 "이 나이에 뭘…"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황씨는 국토종단에 이어 지난해 3월 1일부터 110일간 강원 고성군 통일전망대에서 동해와 남해를 거쳐 서해안을 따라 임진각까지 9400리(3760㎞) 해안 종주 길을 다시 혼자 도보로 하루 30~40㎞를 쉼 없이 걸어 완주하면서도 `아름다운 도전`에 나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방바닥에서 뒹굴다만 갈 순 없잖아."
39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하다 지난 1998년 퇴직한 후 시작한 그의 도보여행은 지난 삶에 대한 `묵상` 그 자체였다. 이미 삭힌 줄 알았던 젊은 시절의 증오와 분노 그리고 회한을 말끔히 털어놓은 곳도 `길 위`에서였다.
황씨는 그야말로 젊게 산다. 학교를 그만두고 퇴직 후유증으로 인한 무기력증을 떨치려 시작한 새벽 등산을 하루도 거르지 않아 `빨치산`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국내 산 대부분을 오른 것도 부족해 몇 해 전부터는 몽골, 바이칼, 캄보디아, 베트남, 네팔 등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 땅 걷기 모임`이란 국토순례단의 땅 기행에도 열성이다.
"나이 먹었다고 못할게 뭐야? 지금 시작하는 게 가장 빠른거야. 나이보다 먼저 늙어가는 마음만 잡는다면 노년은 새로운 인생이지."
서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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