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심(아녜스, 서울 여의도동본당)
제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지켜보고 이를 위해 일하는 산부인과가 좋아서 산부인과를 전공했다면, 역설적으로 가톨릭 신자로서 생명을 앗아가는 일에 가담할 수 없다고 생각해 19년의 산부인과 의사 생활을 접고 새로 시작한 병리라고 하는 과목은 제게 흡족한 학문이었습니다.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전공의 수련 당시 가톨릭 신자이셨던 김석환 교수님께서는 산부인과 의사가 곧 유산시키는 사람이 돼서는 안된다고 간간이 일러주셨습니다. 또한 부인과 자체 내에서 조직검사를 직접 하시며, 연구를 병행하셔서 병리에 관심을 불러일으켜 주셨습니다. 그 후 국립의료원에 근무하면서 스칸디나비아로부터 내한한 의사들을 포함해 임상의와 병리과 의사가 함께 참석하는 병리집담회는 학문적으로나 임상적으로 흥미있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1975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와 덴마크 기관(DANIDA)에서 주관하는 3개월간의 `자궁경부 세포학`과, 스웨덴의 병원(Malmoe General Hospital)에서의 흡인세포학(Aspiration cytology) 연수 기회가 있어 더욱 해부병리를 전공하게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경험했던 융모 상피암으로 죽어갔던 환자 루치아씨, 자궁 경부암으로 어렵게 투병생활을 했던 서울대병원 수련 시절의 27살 젊은 박아무개씨 등 환자들을 생각하며, 해부병리라는 과목은 단지 기초학문으로서뿐 아니라 임상적으로 환자의 치료와 생명에 대한 예후에 크게 기여하는 학문이라 느끼며 긍지를 갖고 노력할 수 있었습니다.
19년간의 산부인과 의사 시절에는 하느님께서 생명을 지키는 방법을 보다 더 임상적 체험으로 알려주셨다면, 그 후 27년간의 병리의사로서 생활은 암 환자 등, 어려운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생명을 오랫동안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는 학문을 경험하도록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신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눈에 안 보이는 하느님을 믿는 가톨릭 신자라면,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체가 설혹 우리 눈에 안 띄는 상태에 존재하더라도, 우리는 그럴수록 그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웃 사랑도 중요한 일이라 노력하는데, 나약한 생명들이 알게 모르게 죽어가는 것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남자와 여자, 배아 상태에서 고령자에 이르기까지의 생명, 건강한 자와 병자, 부자와 가난한 자, 권력자와 그렇지 못한 자, 교육받은 자와 못 받은 자, 이 땅에서 보기에 소위 선한 자와 악한 자, 하느님을 잘 따르는 이와 잘 안 따르는 이 등, 모든 것들을 초월해 우리 인류 각자에게 생명을 흡족히 누리게 하신 것이고 또한 보호하려 하십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추호도 이들의 생명을 손상시킬 권리가 없습니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생명 수호의 입장에서 잘 판단해야 할 일입니다. 배아는 당연히 생명입니다. 그것이 수정란이든 복제배아든, 냉동배아이든지 간에 생명체라고 생각합니다. 질병 치유에 이용한다는 이유로, 어느 생명체를 살리고자 다른 어느 생명체를 희생시킨다는 것입니까? 그것도 인간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명체인 배아를 희생해 생명을 위한 연구를 한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것은 동물의 세계에서나 있을 수 있는,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행위라 생각합니다.
2005년 가을의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교회의 입장`,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정식출범` 등의 글을 대하고 공감하며 기뻐했던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이러한 교회의 깨우침은 우리 교우들에게 확고하고도 든든한 지침이 될 것입니다.
많은 기도 중에 우리가 가톨릭교회 신자로서 실천이 따르는 신앙생활과 함께 생명에 대해 늘 지혜로운 판단을 가질 수 있는 은총을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생명을 사랑하시는 주님 모든 것이 당신 것이기에 당신께서는 모두 소중히 여기십니다"(지혜 11,26).
"또 무엇이 부족하기라도 한 것처럼 사람들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도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오히려 모든 이에게 생명과 숨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사도 1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