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6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3주일-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이기양 신부(서울대교구 10지구장 겸 공동사목 오금동본당 주임)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은 익숙하지만 미워하라는 오늘 복음은 낯설기만 합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의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
 도대체 이 말씀의 의도가 무엇일까요?
 유다인에게 있어서 `미워한다`는 말은 우리말의 의미와는 달리 일부러 둘째 자리에 두어서 소홀하게 생각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은 부모나 형제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도 둘째 자리에 놓고 첫째 자리에는 하느님을 놓으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만을 따르겠다고 고백하며 세례를 받았지만 여전히 예수님과 세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신자들을 많이 봅니다. 세례 받은 사람들의 첫째 자리에는 자식이나 재물, 때로는 관심사인 음악이나 미술이 놓여 있어도 안 되며 심지어 자기 목숨보다도 오직 예수님만이 중심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백 살이 되던 해에 하느님 은총으로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을 얻었으나 어느 날 하느님께로부터 그 아들을 번제물로 바칠 것을 요구받습니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창세 22,2).
 아브라함은 삶의 첫째 자리에 하느님을 모시며 일생을 살아왔기에 애지중지하던 외아들을 넘어서 하느님 말씀에 순명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바다의 모래알보다도 더 많은 후손을 축복으로 약속해 주셨습니다. 반면에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선 이스카리옷 사람 유다는 재물과 예수님 사이에서 갈등을 하다가 결국 재물을 첫 자리에 두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영원히 구원에서 제외되고 말았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삶의 첫 자리에 놓아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의 두번째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 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7).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사회적 상황으로 가장이 갑자기 실업자가 될 수도 있고, 건강하게 잘 살다가 사고를 당해서 장애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 자녀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고 부부간에 말 못할 고민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없으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이지요. 이것을 원망하고 비관하며 끝내 이런 아픔의 십자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부활의 기쁨에 동참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전에 알게 된 한 가정을 소개합니다. 청춘 남녀가 꿈에 부풀어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았는데 불행히도 뇌성마비에 걸린 아기였습니다. 그 때부터 이 가정은 지옥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원망하고 아내는 남편을 원망했으며 아무도 집에 찾아오지 못하게 했을 뿐 아니라 나가지도 않았습니다. 삶의 희망이 다 사라졌지요. 그리고 몇 년이 흘러 예비군 훈련에 참여했던 남편이 무슨 결심을 했는지 정관수술을 받고 왔습니다. 이제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을 한 것이지요. 그리고 다시 6~7년 세월이 흘러 예기치 않게 부인이 임신을 하게 됐습니다. 수술한 자리가 풀려서 둘째 아기를 갖게 된 것입니다.
 많은 고민 끝에 새 생명을 낳으면서 이 부부는 장애아인 첫째 아이를 부끄럽게 여기지 말자고 결심을 했습니다. 부모마저 부끄럽게 여긴다면 아이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겠는가에 생각이 미치면서 아이를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시작한 것입니다. 어려웠지만 한 번 마음을 열기 시작하자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미사를 나가면서 오직 주님께 의탁하는 믿음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성당에서 레지오 단원을 포함한 사람들이 수시로 방문을 해 기도를 해 주고 태어난 둘째 아이도 형을 그렇게 좋아하고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 십여 년을 지옥같이 지냈던 가정에 새롭게 온기가 피어나고 희망이 차오르기 시작했지요.
 누구에게나 다 어려움은 있습니다. 이 어려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하면 할수록 혼란과 고통은 가중 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에 앞서서 주님을 첫 자리에 모실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난관도 받아들일 수 있고 승화시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만을 삶의 첫 자리에 모셔야 한다는 예수님 가르침은 억압이 아닌 자유에로의 초대임을 깨닫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7-09-09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4. 6

1요한 3장 19절
사랑함으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되고, 또 그분 앞에서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