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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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부터 매주 봉사활동 전개해온 ‘외인부대’

교구 초월해 군 장병 선교 “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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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미니코수도회 사야고보 신부가 신 영세자에게 세례를 주고 있다.
 
▶ 사랑의 외인부대는 2003년부터 매주 군 장병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전개해오고 있다.
 
여러 본당 함께 동참…5년전보다 신자 수 3배 늘어
교리교육·간식제공, 자비털어 성탄 부활 때 선물도

# 우리는 외인부대

경기도 의정부에 위치한 육군 1710부대에는 매 주일 오전이면 어김없이 한 무리의 ‘외인부대’가 들이닥친다. 외인부대라서 그런지 복장이나 한 사람 한 사람의 태가 그야말로 중구난방이다.

하지만 부대 초입에서부터 풍기는 분위기가 범상치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 외인부대원 하나하나가 지닌 무기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외인부대의 부대장격인 강현복(베드로·56·서울 도봉산본당)씨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눈빛만으로도 통하는지 차에서 내린 부대원들은 각자의 ‘전투 위치’(?)를 찾아 어느 새 자취를 감춰버린다.

그들의 모습이 사라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부대 곳곳은 새로운 활기로 술렁인다. 창고를 개조한 서른 평 남짓한 공소에서는 촛불이 밝혀지면서 성가가 흘러나오고, 공소 뒤켠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오르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김 속에 얼굴을 묻은 외인부대원들의 존재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난다. 난방 기구라고는 조그만 난로가 전부인 공소 옆 조그만 골방이 이날 미션을 받은 부대원들의 전투 위치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했다. 병사들에게 줄 라면을 끓일 가스레인지에 불이 붙지 않는다. 추운 날씨통에 가스밸브가 얼어버린 것이다. 부랴부랴 휴대용 가스레인지로 물을 끓여 몇 차례나 들이붓고서야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다. 이런 임기응변도 한두 번이 아니어서인지 강씨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끓는 물에 라면이 적당하게 퍼질 즈음, 공소에서는 퇴장성가가 흘러나온다. 공소 한켠으로 난 문에서는 이미 ‘실전’(?) 태세를 완비한 외인부대원들이 병사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늘같은 날은 라면에 김치가 제격이죠.” “한 그릇 더 먹어도 되죠?”
넉살 좋은 병사들의 웃음에 외인부대원들의 마음은 무장해제당하고 만다.

이날도 느지감치 줄을 선 병사들에게는 간식거리로 준비한 빵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했다.

“누가 빵 두 봉지씩 갖고 갔어?”

강씨가 눈을 부라려 보지만 벌써 사태 끝이다.

# 뿌릴 씨앗을 맡겨 주셨으니

외인부대가 봉사에 나선 것은 지난 2003년. 우연한 기회에 이 부대에서 병사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며 선교 활동을 펼치고 있던 수녀를 돕던 강씨가 군의 열악한 현실에 눈을 뜨게 되면서였다.

“모자라는 재능이지만 주님께서 저를 부르셨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들자 용기가 더해졌다. 이왕 주님의 일에 나서는 길, 100명 정도는 주님께로 이끌어야겠다는 데 생각이 이어졌다.

이듬해 함께 활동하던 수녀가 다른 소임을 맡아 떠나면서 병사들을 만나는 일은 강씨의 몫으로 남겨졌다. 주님의 이끄심이었을까, 벅찰 줄로만 알았던 길에 협력자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미니코수도회 수사들이 매 주일 교리교육을 맡고 나섰고, 의정부교구 호원동본당 청년 레지오마리애 단원들이 손발을 자청했다.

근근이 공소예절을 드리는 사이사이 교리를 가르치는 형편이었지만 주머니를 털어 병사들에게 성경과 묵주를 나눠주며 정성을 쏟는 가운데 초창기 40명 남짓하던 병사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눈에 띄게 불어나기 시작했다.

덩달아 강씨를 비롯한 봉사자들의 주머니도 차있는 날보다 비는 날이 많아졌다.

이들의 활동이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2005년부터는 서울 수유동본당 신자들과 월계동, 번동 본당 신자들도 한몫씩 거들고 나서 자연스레 여러 본당 신자들로 외인부대가 이뤄지게 됐다. 예닐곱명씩 팀을 꾸려 주일을 번갈아가며 부대를 찾아 병사들에게 사랑을 전해오고 있는 이들은 성탄절같은 큰 행사 때는 함께 모여 서로를 격려하며 교구와 본당의 벽을 뛰어넘어 사랑의 공감대를 넓혀오고 있다.

모두가 자발적으로 나선 일인데다 자신들의 주머니를 털어 활동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어서 본당에서도 이들의 활동을 아는 이들이 거의 없을 정도다. 봉사를 앞둔 주말이면 병사들에게 줄 간식을 마련하기 위해 장을 보러 다니는 일은 기본이고 한 집에 모여 음식 재료를 장만하는 등 어느 때보다 분주한 시간을 보낸다.

특히 번동본당 신자들은 1년여 전부터 고철이나 폐지를 수거해 판 수익금을 차곡차곡 모아뒀다가 성탄이나 부활절 때 병사들에게 정성이 담긴 선물을 하기도 하는 등 눈에 띄지 않는 노력을 기울여 오고 있다.

지난 2005년 성탄 시기부터 봉사 활동에 함께 해오고 있는 한재련(아가타·45·서울 월계동본당)씨는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하다”면서 “보이지 않는 조그만 나눔을 통해 주님을 전하고 있다는 기쁨에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식당을 운영하면서도 시간을 쪼개 외인부대를 자청한 한경희(젬마.45.서울 번동본당)씨는 “바쁜 삶 속에서도 주님을 전할 수 있는 계기가 돼 즐겁다”며 “활동 속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어 보람되다”고 밝혔다.

이런 마음과 노력에 힘입어 5년 남짓한 새 공소를 찾는 병사들은 3배 가까이 불어났다. 하지만 강씨를 비롯한 봉사자들에게는 아쉬움도 적지 않다.

기껏 열심히 노력해 교리반을 꾸려 예비신자를 양성해도 병사들의 잦은 전출로 영세자를 내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두 달에 한 번꼴로 미사를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하느님을 알게 하고 그런 속에서 기쁨을 나누다 보면 주님께로 한발 더 다가설 수 있겠죠.”

새해부터는 예비신자 교리 방식을 바꿔 새롭게 병사들에게 다가서겠다는 봉사자들의 얼굴에서는 희망이 번뜩이는 결의가 엿보였다.


서상덕 기자 sang@catholictime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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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8-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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