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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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현장속으로] 도시락의 하루

“탁탁~ 도마 위에 '희망'을 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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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사랑의 나눔회’ 회원들이 독거노인과 노숙자들에게 전해 줄 도시락을 만들고 있다.
맛깔스런 도시락을 순식간에 만들어 내는 이들은 ‘도시락 달인’이라 할 만 하다.
 
▶ 사랑의 나눔회 봉사자가 쪽방에 사는 독거 어르신을 만나 따끈한 도시락을 전하고 있다.
 
난 도시락이다. 그냥 도시락이 아니라 가톨릭 신앙인들의 사랑 듬뿍 담은 ‘희망 도시락’이다. 아침에 태어나서 저녁이면 사라지는 하루살이 인생. 하지만 나를 만드는 사람,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 모두가 나로 인해 행복해 하기에 난 외롭지 않다.

오전9시

중랑구 망우3동 423-35,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사랑의 나눔회 나눔의 집’(원장 박대성) 주방. 나를 만들어줄 마음 따뜻한 10여 명이 모였다.

망우동본당 정진숙(아우레아·57) 아줌마, 면목동본당 서청자(수산나·69) 할머니, 그리고 여의도 순복음교회에 다니는 김정숙(54) 아줌마…. 길게는 10년 가까이 나와 함께해 온 친근한 분들이다. 나를 만들어도 특별한 보답은 없다. 그런데도 나를 만들면서 더 행복해 졌다며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이곳을 찾아 온다.

특히 개신교 신자인 김정숙 아줌마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천사 같은’ 가톨릭 신앙인들의 봉사에 동참하고 싶어 지난 8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봉사에 나서고 있다. 그리고 이분들…. 뭐가 즐거운지 늘 밝은 모습이다. 서청자 할머니가 “마음이 즐거우니 나이도 잊어요”한다.

오늘은 무엇으로 나를 만들려나…. “탁탁탁탁….” 도마와 칼, 그릇과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나를 만들어줄 꽁치조림과 소시지 볶음, 오징어 찌개가 차츰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오전 11시

찜통 속 물이 부글부글 끓는다. 밖은 영하 3°라는데 이곳은 ‘사랑 짓는’ 온기로 훈훈하다. 반찬을 담을 일회용 용기 수백개가 탁자 위에 놓인다. 아줌마 3명이 1개조가 돼서 그 용기에 반찬 3개씩을 능숙한 솜씨로 담는다. 반찬이 다 채워지면 고무줄로 반찬을 일일이 묶는 작업이 시작된다.

여기에는 특별한 요령이 필요하다. 오른손으로 반찬을 들고 오른손에 감긴 고무줄을 왼손 엄지손가락으로 당겨 반찬통을 묶는다. 반찬 하나 묶는데 걸리는 시간은 채 0.5초. 이 분들…. ‘도시락의 달인’들이다.

문제가 발생했다. “처음부터 반찬을 너무 많이 넣지 말았어야 하는데….” 반찬이 모자라기 시작했다. 아줌마들은 그 따뜻한 마음 만큼 손도 크다. 처음부터 조금씩 반찬을 분배해 넣었어야 하는데 ‘푹푹’담아 주다 보니 반찬이 모자라게 된 것.

반찬을 다시 급조해야 한다. 시간이 벌써 12시를 넘기고 있다. 아줌마들이 발을 종종거리며 일을 서두른다.

오후4시

반찬과 국은 오전에 미리 만들어 두지만, 밥은 따뜻한 온기를 유지하기 위해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만든다. 밥을 위해 들어가는 쌀은 하루 80kg. 밥솥을 열자 김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큰 주걱이 밥을 솥에서 일회용 용기로 옮긴다.

드디어 내가 탄생했다. 총 500개. 나를 만들어준 아줌마들 음식 실력 하나는 알아주어야 한다. 500명분 반찬을 했는데도 그 맛이 4인 가족 반찬 한 것처럼 맛깔스럽다. 한 아주머니가 “사랑이 듬뿍 담겨 맛있는 거야”한다. 내 옆에는 주먹밥 200여 개도 만들어 졌다. 집이 없는 노숙자들에게 갈 거란다. 5시30분 봉사자들이 나와 동료들을 큰 차에 옮겨 태운다.

오후 6시30분

내린 곳을 보니 서울역 건너편이다. 이곳에는 500여 명이 넘는 사람이 3.3㎡도 채 되지 않는 쪽방에서 겨울을 나고 있다. 60대 이상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다. 하루 한 끼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는 이들….

이곳에 오니 오전과 오후에는 보지 못했던 얼굴들이 많이 보인다. 도시락 배달 봉사를 하는 또 다른 성당에서 온 분들이다. 봉사자들의 손에 들려 나는 계단을 오르고, 후미진 구석방을 찾아간다. 칼바람이 부는 추운 날씨. 그래서 봉사자들은 내 온기를 잃지 않으려고 가슴에 안는다.

“할머니 더 필요한 것 없으세요?” “할아버지 요즘 몸은 많이 나아지셨어요?” 봉사자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한다. “오늘 저녁 굶나 했는데, 이렇게 밥이 오네….” 오늘 처음 이곳에 이사 왔다는 한 할머니가 말을 잇지 못한다. 벌써 3개월째 나를 만난 한 할머니는 “매번 도시락 먹을 때 마다 밥맛이 너무 좋아요. 좋은 쌀로 밥을 해줘서 그냥 꿀처럼 목으로 넘어가요.”라며 봉사자들을 일일이 가슴에 안는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사는 집은 냄새가 나고, 지저분하지만 그래도 난 행복하다. 나를 반겨주시니 말이다. 이곳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오늘도 나와 함께 하루를 더 사신다.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사랑의 나눔회 “봉사는… 맛있다”

설 연휴 귀성전쟁이 한창이던 2월 5일.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사랑의 나눔회’ 봉사자들은 설연휴도 잊은채 어려운 이웃 한 가운데서 봉사의 땀을 흘렸다.

이번 주 취재 현장으로 선정, 기자가 함께한 나눔의 집 주방은 칼바람 추위에도 불구하고 훈훈한 온기가 가득했다. 그 온기는 연탄 한 장 없어 골방에서 겨울을 나고 있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희망의 이름으로 전해졌다.

사랑의 나눔회는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 저녁 서울역 인근 쪽방 거주자 500여 명에게 도시락을 배달하고 있다. 여기에 사용되는 쌀은 매주 160kg. 일회용 용기 구입에만 매주 10여 만원이 소요된다.

쌀 및 반찬 재료를 구입하고, 도시락을 만들고, 운반하고 배달하는 일까지 모두 봉사자들의 손에 의해 이뤄진다. 이들 봉사자들은 태안 기름유출 피해 사고 당시에도 태안을 방문, 봉사자를 위한 식사 제공에 나선바 있다.

나눔의 집 박대성(바르나바·60) 원장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 해 드리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른다”며 “봉사와 후원을 통해 하느님 행복을 맛보길 원하는 이들이 있다면 언제나 환영”이라고 말했다.

※봉사 및 후원 문의 02-434-9345, 011-310-7849


우광호 기자 woo@catholictime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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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8-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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