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때 지역 복음화의 산실이었던 용산공소.
소방도로법에 의해 기존 건물이 철거된 후 컨테이너를 구입해 간신히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
“휴.”
김희태(바르톨로메오·53) 회장이 한숨을 내쉰다.
10년 간 회장직을 맡아오고 있는 청주교구 청산본당 용산공소(충북 영동군 용산면 구촌리 290-10)가 폐쇄의 기로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2대째 일하고 있는 그의 부담감은 더하다.
그가 회장을 맡고 있는 용산공소는 컨테이너 2동으로 이뤄져 공소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지경이다. 시골마을 공터 한 켠, 컨테이너를 마련해 미사를 봉헌하고 공소예절을 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컨테이너 공소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여름에는 ‘찜통’처럼 덥고 겨울에는 ‘냉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민들의 예비신자 입교에 힘쓰고 공부방을 마련해 몸소 아이들을 가르치던 백영자(마리아·77) 할머니가 노환으로 활동하지 못하게 되는 바람에 용산공소의 어려움은 더해졌다.
공부하던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낙후되어 가는 공소에 신자들은 발길을 끊었다. 몇몇 신자들이 십시일반 공소 설립기금을 모으고 바자를 열고 전기·수도세를 줄여보지만 건물을 세우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선교에 나서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차량이 문제다. 상당한 거리에 있는 ‘리’ 단위의 선교는 꿈도 못 꿀 지경이다.
김회장은 “눈물로 공부방을 닫으며 책들을 팔아 단 돈 ‘10원’이라도 공소 설립기금에 보태려했다”며 “아이들의 책을 모두 팔아 모은 돈이 ‘1만5000원’이었다”고 말했다.
1961년, 메리놀 외방전교회가 흙벽돌로 공소를 설립한 후 용산공소는 이 지역 복음화의 산실이었다. 신자들은 ‘주민의 60가 천주교 신자’일 만큼 용산공소의 영향이 실로 컸다고 전한다. 그러나 2001년 소방도로법에 따라 건물은 철거됐고 신자들이 2002년 컨테이너를 구입해 간신히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김회장은 “공소가 컨테이너로 바뀐 후부터 영세자가 생기지 않은 것은 물론 기존 신자들의 냉담도 늘어가고 있다”며 “열심히 이뤄 놓은 공소가 어느날 ‘폐물’로 전락하지 않을까 두렵다”고 말했다.
현재 용산공소를 찾는 신자들은 20여 명. 신자들은 모두 어려움과 안타까움을 고백하고 있다.
“공소 설립을 위해 매일 모여 9일 기도를 바쳤지만 이제 추워서 그것도 할 수 없어요. 남아있는 신자들이 대부분 어르신들이라 미끄러지실까봐 집에서 각자 기도를 하지요.”
신자들에게 공소는 남다른 의미다. 유년의 추억이 묻어 있기도 하고, 시집오던 날 함께 울고 웃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새롭게 생긴 개신교회들의 활발한 선교활동을 볼 때면 그저 부러울 뿐이다.
공소 신자 황선이(안젤라·56)씨는 “많은 신자들이 큰 도시의 본당과 자매결연 등을 통해 공소가 다시금 살아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용산공소의 겨울나기가 어느 해 보다 힘겹다.
※문의 043-732-8024 청산성당
오혜민 기자
gotcha@catholictime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