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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봉사 3만 시간… 기러기 아빠의 비행

자원봉사왕 이해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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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영씨
 

    어릴 적부터 남에게 나눠주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던 소년이 있었다.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에게 먹을 것을 몰래 갖다 주다가 엄마에게 혼쭐이 나기 일쑤였다.
 그 소년은 50여 년 뒤 `3만 시간 통역 자원봉사`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2008년에는 봉사왕으로 뽑혀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경기도 홍보대사로 일하고 있는 이해영(바오로, 64)씨 이야기다.
 
 "봉사에 미치지 않으면 이 일을 할 수 없어요. 당장 내 생활 형편이 넉넉지 못한데 돈 한 푼 없이 남을 돕겠다고 쫓아다니는 게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죠."
 
 이씨는 주머니에 1만 원 이상 돈이 있어본 적이 거의 없다. 기껏해야 몇 천 원. 그 돈도 거리를 걷다 걸인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다 털어준다.
 
 그는 수원 화성, 남양주 홍유릉 등 경기도의 주요 문화 유적지를 찾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통역 봉사를 하고 있다. 부친의 직장 때문에 어려서부터 외국인과 만날 기회가 많았던 그는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등 3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여행 가이드는 통역은 해 줄 순 있지만 유적의 역사적 의미, 우리나라의 역사 등을 상세히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죠. 저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유구한 역사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1974년 미국 일리노이주 주지사로 있던 친구에게 "한인과 미국인 간 통역 봉사를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그의 봉사 인생은 시작됐다.
 
 이씨는 문화적 차이로 갈등을 빚는 한인과 미국인들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하며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줬다. 그 후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통역봉사를 시작했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편한 삶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미국에서 구두닦이, 빌딩 청소부, 정원사 등 안 해 본 일이 없다. 10년 넘게 하루에 세 시간 이상 자 본 적이 없을 정도다. 힘들게 번 돈의 대부분은 한인 노숙자들 밥을 먹이는데 썼다.
 
 미국에서 봉사 활동을 하다가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도와달라는 연락이 와 한국으로 돌아왔다. 1994년 대전 엑스포, 2002 월드컵, 부산 아시안게임 등 굵직굵직한 행사에는 어김없이 그가 있었다.
 
 이씨의 아내와 세 딸은 뉴질랜드에서 생활하고 있다. 20년 넘게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가족들도 보고 싶지만 한국에서 봉사 활동을 중단할 수가 없다"면서 "아내도 이런 나를 원망하기보다 응원해 준다"고 말했다.
 
 주일 활동이 많아서 그동안 신앙생활은 열심히 하지 못했다고 쑥스럽게 고백하는 이씨. 그의 꿈은 자신과 같은 봉사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저도 봉사활동을 계속하겠지만 이제는 저보다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후배 봉사자들을 양성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는 본당에서도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입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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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9-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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