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세례자들이 말한다.
![]() ▲ 어린 나이에 세례를 받은 이들이 지속적으로 신앙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가정, 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진은 유아세례를 받는 아기 모습.
평화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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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세례는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다리`이고, 아이들을 은총의 길로 인도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올해 주님세례축일(1월 11일)에 유아들에게 세례를 베푼 뒤 유아세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흔히 유아세례는 부모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아 하느님의 무한한 은총을 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유아세례 혹은 어린나이에 세례를 받은 청년들 중 냉담을 하는 이가 적지 않다.
이 같은 사실은 초등학교 주일학교에서 중ㆍ고등학교 주일학교로 올라가면서 급격히 하락하는 출석률과 10에 머무는 청년 미사참례율(서울대교구 기준)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어린나이에 세례를 받은 후 냉담 중인 이들을 만나 그들의 교회를 떠난 이유를 들어봤다.
부모가 시켜서 성당에 나가는 청소년들
스스로 자유가 생기면 발길 끊기 시작해
민동국(요한, 23)씨는 주위 사람들이 종교를 물어보면 "종교가 없다"고 대답한다. 초등학교 때 세례를 받은 민씨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성당에 발길을 끊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는 부모님이 시켜서 성당에 갔지만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성당을 나가지 않았어요. 저는 믿음이 없어요. 앞으로 다시 신앙생활을 할 생각도 없고요."
민씨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천주교 신자가 됐고 세례를 받은 후에도 `왜 믿어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12년째 냉담 중인 황아무개(요한, 31)씨는 아주 가끔 어머니와 함께 성당에 나간다. 주일미사에 참례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지만 언제나 일과 친구들과의 만남이 우선이다. 미사는 정말 할 일이 없을 때나 성탄ㆍ부활과 같은 특별한 날만 참례한다. 황씨에게 신앙생활은 언제나 뒷전이다.
"초등학교 때는 복사단 활동도 잠시 하고, 중ㆍ고등학교 때는 학생회 활동도 할 만큼 나름대로 건실한 신앙인이었어요.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 다른 놀 거리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성당을 멀리하게 됐죠."
초등학교 3학년 때 세례를 받은 최홍규(안토니오, 31)씨는 세례를 받기 전 주요 기도문 12가지를 완벽히 외워 교리를 가르치던 본당 수녀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커서 꼭 신부님이 되겠다`고 다짐했을 정도로 누구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 최씨가 성당에 발길을 끊게 된 계기는 세례를 받자마자 시작한 복사단 활동 때문이었다.
많으면 일주일에 서너 번씩 새벽미사 복사를 서야 했던 최씨는 몸이 아파서 복사단 선배들에게 새벽미사 복사를 잠시 쉬겠다고 말했다. 선배들의 따뜻한 위로를 기대했지만 돌아온 것은 "그것도 못 견디냐"는 심한 꾸지람 이었다. 그 후로 최씨는 성당에 완전히 등을 돌렸다.
"어린 마음에 충격이 컸어요. 신앙생활은 자발적으로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 했는데 신앙생활을 적극적으로 할수록 오히려 부담과 주위의 압박만 커지더군요."
유아세례를 받은 고현규(안토니오, 30)씨는 6년째 냉담 중이이다. 복사단 활동을 했던 고씨는 초등학교 때 1주일에 5일 이상 미사에 참례할 정도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신앙심이 깊어 성당을 열심히 다녔다기보다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좋았어요. 중학교 때 잠시 냉담을 했지만 고등학교 때는 사제의 길을 고민할 정도로 다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고씨가 성당을 멀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모순적이게도 `성당 활동을 너무 열심히 해서`였다.
성당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고씨는 집에서 꽤 거리가 있는 대학을 다니면서도 복사단, 전례부, 교리교사, 성가대 활동까지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1년을 보내다가 지쳐버린 고씨는 성당 활동을 모두 접으며 미사참례까지 중단했다. 그 후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 냉담을 하고 있다.
취재를 하며 만난 유아세례자(초등학교 때 세례를 받은 청년 포함) 청년들이 냉담을 하는 시기는 주로 초등학교 졸업 후, 대학 입학 이후부터였다.
신앙생활을 왜 해야 하는지 뚜렷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부모가 시켜서 성당에 나간 이들이 어느 정도 자유가 생겼을 때 발길을 끊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들 중 대부분은 "어릴 적에는 `그냥` 성당에 다녔다"고 털어놨다.
어렸을 때부터 성당활동을 열심히 하다가 교회를 등진 이들도 적지 않았다. 신앙생활을 통해 마음의 평안을 얻고, 기쁨을 찾고자 했지만 적극적인 신앙생활이 어느 순간 무거운 짐으로 돌아온 것이다.
`공부만 잘하면 성당에 안가도 된다`는 부모 의식도 문제
가정에서 신앙생활 체험해야 교회에서 멀어지는 일 없어
수원교구 청소년국장 이건복 신부는 "어린 나이에 세례를 받은 청소년들이 교회를 멀리하는 근본적 이유는 그들에게 신앙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라며 "부모가 모범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여줘 청소년들이 가정에서 신앙을 체험하게 된다면 교회에서 멀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당활동에 대한 부담감을 못 이기고 냉담을 하는 청년들 문제에 대해서는 교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 신부는 "교회에 봉사하는 청년이 한정돼 있기에 그런 일이 생긴다"며 "더 많은 청년들이 교회에 봉사할 수 있도록 교회ㆍ본당에서 청년들에게 `희생과 봉사`라는 소명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청년대상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본당에서 청소년사목을 담당하는 조영훈(서울 성내동본당 보좌) 신부는 청소년 냉담의 이유를 가정에서 찾았다.
조 신부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청소년들은 부모가 성실한 신앙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부모가 `공부만 잘하면 성당은 안 가도 된다`라는 생각을 갖고 아이들의 신앙생활을 후순위로 미루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교회에서 멀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