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종대 강경본당 주임신부가 `성 김대건 신부 유숙 성지` 입간판을 가리키며 성역화 사업을 전개하는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왼쪽 현대식 가옥이 김 신부 유숙지다.
|
"마침내 10월 12일(양력) 우리는 강경 포구에서 약간 떨어진 외딴 곳에 닻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비밀리에 배(라파엘호)에서 내려야 했습니다."
1845년 10월 29일.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와 김대건 신부는 조선의 남쪽지방 강경에 상륙한 뒤 파리외방전교회 바랑 교장신부에 편지를 보낸다. 그해 8월 17일 사제품을 받고 조선을 향해 출발한 김 신부 일행이 뜻하지 않게 풍랑을 만나 제주도 용수리에 도착했다가 다시 닻을 올려 서울로 향하던 길이었다. 바로 현 충남 논산시 강경읍 홍교동 100의1이었다.
김대건 신부는 당시 강경 포구에 닻을 내린 뒤 이곳에 유숙하며 조선 땅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고 사목을 시작한다. 김 신부가 조선교회 전교 발판을 마련했던 이 유숙지를 성역화하기 위해 대전교구 강경본당(주임 이종대 신부)이 나섰다.
강경본당은 `성 김대건 신부 강경 유숙지 성역화 사업`의 첫 걸음으로 김 신부 일행이 라파엘호에서 내렸던 10월 12일 오후 8시에 황산대교 옆 강경 포구 나암에서 유숙지까지 3㎞를 촛불 도보성지순례를 실시했다.
김 신부 일행 유숙지가 처음으로 확인된 것은 고 오기선 신부의 저서 「곡예사 같은 인생」(61~64쪽)을 통해서다. 1966년 1월 초 구순오의 증손녀 구안나가 당시 서울 대방동본당에서 사목하던 오 신부를 찾아와 김 신부 일행이 구순오의 집에 머물렀던 사실을 증언한 사실을 이 책에 공개한 게 단초가 됐다.
강경본당 신자들 증언에 따르면, 김 신부 일행이 묵었던 유숙지는 ㄱ자 기와집에 방이 5개나 되는 집으로, 한동안 여관으로 쓰여지다가 사글셋방으로 바뀌었다. 2003년엔 현 집주인이 현대식으로 집을 새로 지으며 옛집은 사라졌지만 논산시에서 지난해 김 신부 일행 유숙지 앞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유숙(留宿) 성지`라는 내용의 입간판을 세워 그의 선교열정이 배어있는 땅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전해주고 있다.
이종대 주임신부는 "강경본당에 부임해 김대건 신부님 유숙지를 알게 되면서 이 역사적 터전을 성역화하는 일이 사제로서 김 신부님의 후배된 도리라고 생각해 왔다"며 "40년 사제생활을 마무리하면서 김대건 신부님 유숙지를 성역화하는 기반이라도 준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후원 문의 : 041-745-1298, 강경본당 사무실
정완영 명예기자
0espresso@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