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3일
본당/공동체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공동체] 청산본당 출신 신자들, 10일 에드워드 리처드슨 신부 추모

"아버지 같은 신부님 아버지 곁에 영면하소서"... 청주 청산본당 출신 신자들, 리처드슨 신부 찾아 기도 바치며 고인 추모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이용춘 유스티노(왼쪽 끝)씨 등 청산본당 출신 신자들이 용산 성직자 묘역을 찾아 리처드슨 신부를 기리는 위령기도를 바치고 있다. 전대식 기자 jfaco@pbc.co.kr
 


   `짧았지만 긴 여운을 남긴` 사목이었다.

 10일 낙엽이 지천으로 흩날린 서울 용산성직자묘역. 성직자 69위와 신학생 2위, 치명자 1위 등 72위가 영면에 든 묘역에는 성직자들을 기리는 신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에드워드 리처드슨(1931~73, 메리놀외방전교회) 신부 묘역도 청주교구 청산본당 출신 신자들로 둘러싸였다. 쌀쌀한 날씨에도 신자들은 1시간 가까이 위령 기도를 바치며 고인의 삶과 사랑을 기렸다. 애절하고도 경건한 연도 가락이 성당 경내로 흘러든다. "너그러우신 주 하느님, 에드워드 신부님 기일을 앞두고 천국 영광을 바라보며 비오니, 세상에 사는 저희가 주님 말씀을 따라 살게 하소서.…"

 이날 위령기도에 함께한 청산본당 출신 신자는 모두 8명. 예년에 10여 명 남짓 참석했던데 비해 갑작스런 추위로 줄었지만, 추모 마음만은 다들 한결같다. 4~5년 전만 해도 청산본당에서 버스를 대절해 상경했지만, 고인을 기억하는 이들이 타계하면서 중단됐다. 하지만 청산초등학교 47회 졸업생 출신 신자들만은 이를 멈추지 않았다. 리처드슨 신부이 남긴 사랑을 잊지 못해서였다.

 30대 초 젊은 나이에 청산본당 2대 주임으로 부임한 리처드슨 신부는 재임기간이 1961년부터 64년까지 4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짧은 세월에 굵직한 사목적 발자취를 남겼다. 미국에서 은인들이 밀가루나 분유 같은 구호식량과 물품을 보내오면, 면사무소를 통해 노동을 한 몫으로 나눠줬다. 그때 청산면 내 교량이나 둑, 축대 등이 만들어져 아직도 남아 있다. 공사판에 나오지 못하는 이들에겐 슬며시 찾아가 쌀을 독에 붓고 나오곤 했다. 현 교육관(구 성은학원)과 수녀원도 그때 지었다.

   특별히 어린이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양윤지(체칠리아, 60, 서울 노량진동본당)씨도 "문화적 혜택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시절에 에드워드 신부님께서는 본당 아이들에게 빙고 게임같은 각종 놀이를 가르쳐주시고 함께 즐기며 즐거워 하셨다"고 전했다.

 리처드슨 신부를 친아버지처럼 여기고 병수발을 들었던 이용춘(유스티노, 61)씨는 "그때 구호품을 구하기 위해 대림시기마다 미국에 있는 친지와 벗들에게 수백 통의 원조편지를 일일이 쓰시던 신부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며 "신자, 미신자를 가리지 않고 존경하던 신부님께서 43살 젊은 나이에 하늘로 돌아가신 게 안타깝기만 하다"고 말했다.

 한국에 나와 있던 참에 위령기도에 함께한 재미교포 박용득(프란치스코, 65)씨도 "신부님과 함께 `별을 따라가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성탄 연극을 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며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버지 같은` 사제였다"고 추모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9-11-22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9. 3

시편 30장 6절
제 목숨을 주님 손에 맡기니, 주 진실하신 저의 하느님, 주님께서 저를 구원하시리이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