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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 찾아 삼만리...인쇄용 인화지 개발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작업하는 김석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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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란씨가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복본 작업을 마친 태조실록 제1권을 펼쳐보이고 있다.


   한지 인쇄는 불가능하다는 통념을 깨고 디지털 사진 인화용 및 인쇄용 전통 한지를 개발한 여성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복본화 작업을 하고 있는 (주)미래영상 대표 김석란(마리아 막달레나, 49)씨다. 10여 년에 이르는 억척같은 노력의 결실이 세계기록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김씨는 이제 시작이라며 도전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어려서부터 한지 고향 전주에서 자란 김씨는 서울예전(현서울예술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지만 학교를 다 마치지 않고 다시 전주로 내려가 우석대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사진 촬영도 좋지만 사진과 카메라 메커니즘에 대해서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공을 바꿨지요."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에 과학적 기반이 갖춰진다면 훨씬 더 창조적 예술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있었다.

"나만 할 수 있는 것 찾아라"

 "사실은 최고가 되려기보다는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싶었어요."
 대학을 졸업한 김씨는 전주에서 `김석란 사진 연구실`을 열었다. `포토 스튜디오`라는 말이 유행이었지만 굳이 `사진 연구실`이라고 우리말을 사용했다. 우리 것에 대한 애착 때문이었다고 한다. 스튜디오 활동을 하면서 공부를 계속해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한 김씨는 사진을 더 배우고자 국외 유학을 결심했으나 남편을 만나는 바람에 접고 결혼했다. 1995년이었다.
 "남편은 서양화가였고, 저는 사진을 하고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대화를 많이 하게 됐어요. 서로 실험도 많이 했지요. 남편이 한지에 유화를 그리는 작업을 하는 것을 보고 저는 사진 인화를 한지에 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감광 약품을 구해 한지에 발라 시험을 거듭한 끝에 인화에 성공했다.
 "어떤 분들은 한지 인화지에 인화하면 사진이 흐릿해서 싫다고 하시는데 저는 오히려 은은한 그 분위기가 좋았어요. 그래서 1996년에는 한지 인화 사진전도 열었지요."
 한지 인화지 개발에 성공했다고 하지만 어설펐다. 하지만 한지 사진에서 배어나오는 은은한 멋이 마치 우리춤에서 풍기는 단아하고 우아한 멋을 느끼게 해 관심을 갖고 계속 연구하면서 김씨는 한지에 매료됐다.
 "사진은 예술성과 함께 기록성과 보존성도 중요해요. 그런데 한지는 천년을 간다고 하잖아요."
 그러던 차에 1997년 말 IMF 사태가 터졌다. 사진 전시가 없어지니 자연 일거리도 없어지고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정부가 벤처기업들에 창업자금을 지원한다기에 여러 차례 문을 두드렸고, 마침내 2000년 8월 3500만원의 창업지원금을 바탕으로 인화용 한지로 사진을 출력하는 `미래영상`을 설립했다.
 `사진과 한지의 절묘한 조합`으로 기대를 모으는가 싶던 사업은 오히려 그 반대가 돼 버렸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한지 인화지보다는 일반 인화지를 더 선호한 데다가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용 인화지로는 시장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씨는 디지털 시대에 부응하는 프린트용 한지 개발에 착수했다. 오프셋 인쇄나 잉크제트 프린트에 적합한 한지 개발은 쉽지가 않았다. 보풀이 많이 이는 데다 번짐도 많아서 힘들었다. 실패를 거듭하면서 김씨는 화선지를 비롯한 개량 한지들은 전통 한지와 질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한지 장인들을 찾아다니며 숱한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김씨는 마침내 인쇄를 해도 농담은 있으나 번짐은 없는 인쇄용 전통 한지 개발에 성공했다. 2002년 10월 특허 출원을 했지만 발명 특허를 얻기까지 거의 3년이나 걸렸다.
 개발은 했지만 써먹을 길이 막막했다. 증서와 상장, 졸업장, 임명장뿐 아니라 오래 보존해야 하는 각종 대장과 기록물들에 적합한 상품이었지만 시장을 제대로 뚫을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살림은 점점 쪼들려 두 아이까지 네 식구가 방 한칸을 얻어 지낼 정도까지 됐다. 억척같이 뛰었다.
 "한지처럼 보존성이 뛰어난 것이 없잖아요. 그래서 조달청을 비롯해 청와대, 삼성문화재단에도 쫓아다니며 임명장이나 위촉장 그 밖에 오래 보존해야 할 기록물에 한지를 이용해 달라고 부탁했지요. 물론 번번히 거절당했지만요…. 규장각에도 갔을 정도니까요."

천년 사랑 한지로 한류 일으킬 터

 지성이면 감천이라든가. 마침내 기회가 왔다.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의 유일본인 전주사고본의 복본을 만드는 사업에 김씨가 선정된 것이다. 지난해 4월이었다. 「조선왕조실록」 원본과 똑같은 복본을 만들 수 있는 사업자는 현재로는 김씨가 유일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2011년까지 약 20억을 들여 원본과 똑같은 복본 604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김씨는 전통 한지의 보존 기간이 천년 이상 간다고 해서 `천년 사랑`이라고 이름붙인 이 컴퓨터 잉크제트 인쇄 및 고급 오프셋 인쇄용 전통 한지가 블루오션 시장의 주역으로 또 다른 한류 열풍을 일으킬 날이 오리라는 꿈을 갖고 있다.
 "세계기록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을 100질 정도 복본화해 세계 유명 도서관에 한 질씩 기증할 수 있다면 우리 문화를 알리는 데 그보다 더 멋진 일이 어디 있겠어요?"
 서울에서 공부하던 때인 30년 전 친구와 하숙집 아주머니의 권유로 세례를 받았다는 김씨는 "힘들 때든 기쁠 때든 늘 하느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았지만 최근까지도 제대로 된 신앙생활은 하지 못해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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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0-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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